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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히말라야에 잠든 직지원정대 2명 추모비 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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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히말라야에 잠든 직지원정대 2명 추모비 제막

입력
2018.11.21 17:31
수정
2018.11.22 09:3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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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수 전 직지원정대장이 21일 충북지역 산악인들이 묵념을 하는 가운데 박종성·민준영 대원을 기리는 추모조형물과 추모비를 매만지고 있다. 한덕동 기자
박연수 전 직지원정대장이 21일 충북지역 산악인들이 묵념을 하는 가운데 박종성·민준영 대원을 기리는 추모조형물과 추모비를 매만지고 있다. 한덕동 기자

“직지를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고 히말라야의 별이 된 두 대원을 청주시민들과 함께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9년 전 히말라야에 직지 이름을 딴 신루트를 개척하려다 실종된 직지원정대 박종성(실종당시 43세)·민준영(37)대원을 기리는 추모조형물과 추모비가 청주 고인쇄박물관내 직지교 입구에 세워졌다. 21일 가는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거행된 제막식은 박연수 전 직지원정대장과 유족 대표의 추모사, 두 대원을 위한 묵념 순으로 진행됐다.

박 전 직지원정대장은 “알피니즘을 추구하며 직지에 담긴 창조정신을 전 세계에 알리려 했던 종성이와 준영이의 꿈과 개척정신을 지역 산악인들은 물론 전 시민이 가슴속에 되새길 것”이라고 추모했다. 당시 히말라야 신루트 도전을 지휘했던 그는 “내년 1월 1일 실종 현장을 찾아 ‘고향에 너희들을 위한 공간이 생겼다'고 꼭 전하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종성씨의 형 종훈씨는 “동생의 도전 정신이 청주시민과 함께 기억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 동안 먹먹했던 가슴이 조금은 뚫리는 것 같다”며 “설산에 새겨진 직지원정대의 피켈 자국이 직지 세계화의 밑거름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2009년 9월 히운출리 북벽 등반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박종성(왼쪽)·민준영 대원. 두 사람은 셰르파 등 현지 고용인 도움없이 새롭고 험난한 루트를 찾는 알파인 방식을 고집했다. 직지원정대 제공
2009년 9월 히운출리 북벽 등반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박종성(왼쪽)·민준영 대원. 두 사람은 셰르파 등 현지 고용인 도움없이 새롭고 험난한 루트를 찾는 알파인 방식을 고집했다. 직지원정대 제공

추모조형물과 추모비는 지역 작가들이 제작했다. 도예가 김만수씨가 두 대원이 도전했던 히운출리 북벽을 그대로 본 떠 자연석으로 형상화했고, 추모 시는 류정환씨가 썼다. 2,000여 만원의 제작비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지원했다.

21일 제막된 추모조형물과 추모비. 한덕동 기자
21일 제막된 추모조형물과 추모비. 한덕동 기자

직지원정대는 세계 최고(最古)금속활자본인 직지를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충북지역 산악인들이 2006년 결성한 등반대다.

이 원정대 일원인 박종성·민준영 대원은 2008년 6월 파키스탄 북부 카라코람 산군에 있는 무명봉(해발 6,235m)에 올라 ‘직지봉’으로 명명한 주역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같은 해 7월 이 봉우리의 이름을 직지봉으로 정식 승인했다. 이는 히말라야에 있는 유일한 한글 이름 봉우리다

두 대원은 여세를 몰아 2009년 9월 수직 빙벽으로 악명높은 히운출리 북벽에 신루트인 '직지루트'를 개척하러 등반에 나섰다가 실종됐다. 두 대원은 높이보다 등반 과정을 중시해 어렵고 험난한 코스를 개척하는 알피니즘을 추구했다. 이런 두 대원의 도전 정신을 기리기 위해 충북지역 산악인들은 히운출리 베이스캠프에 추모비를 세우고 매년 추모 등반을 하고 있다.

청주=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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