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조·황인범에 “수준에 맞게 유럽이나 가라”
‘너희들은 너희들 수준에 맞게 유럽이나 가.’
20일 호주 브리즈번에서 벌어진 우즈베키스탄과 평가전(4-0 승)에서 맹활약한 황의조(26ㆍ감바 오사카), 황인범(22ㆍ대전)을 본 한 누리꾼의 반응이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특례 혜택을 받은 두 선수가 유럽에서도 충분히 통할 실력이란 뜻이다.
팬들은 지난 10년간 대표팀 기둥이었던 기성용(29ㆍ뉴캐슬)과 이청용(30ㆍ보훔)을 합친 별명 ‘쌍용’에 빗대 ‘쌍황 시대가 왔다’며 반색하고 있다.
황의조는 지난 17일 호주전(1-1) 선제골에 이어 우즈벡전에서도 벼락같은 슛으로 팀의 두 번째 골을 책임졌다. 황인범도 두 경기 모두 선발 출전해 날카로운 패스와 안정적인 공격 전개 능력을 선보이며 중원을 지배했다.
황의조의 골 결정력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일본 J리그에서 16골, 컵 대회 4골,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9골, 국가대표 3골 등 그가 올 시즌 넣은 골만 32골이다. 특히 소속 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최근 26경기에서 25골을 넣었다.
황의조는 1990년대 아시아 최고 스트라이커로 군림했던 황선홍 전 FC서울 감독의 후계자로 자주 거론된다. 위치 선정이나 경험, 수비를 등지는 플레이 등에서는 아직 황 전 감독에 못 미치지만 슛 능력만큼은 이미 넘어섰다는 평이다. 축구 데이터 분석 업체 팀 트웰브에 따르면 황의조는 우즈벡전에서 5개의 슈팅을 때렸고 이 중 1개의 유효슈팅을 골로 연결했다. 나머지 4개의 슛도 골문을 종이 한 장 차이로 비껴갔다. 언제 어느 위치에서든 묵직하고 정확한 슛을 날리는 황의조의 모습에 팬들은 ‘이런 스트라이커의 등장이 얼마 만이냐’며 속 시원해한다.
황의조는 대한축구협회가 연말에 주는 ‘올해의 선수’ 유력 후보다. 이 상은 지난 수년 간 기성용(2011ㆍ2012ㆍ2016), 손흥민(2013ㆍ2014ㆍ2017)이 양분해 왔는데 올해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황인범도 단연 돋보였다. 파울루 벤투(49) 국가대표 감독은 이번 원정에 배려 차원에서 붙박이 주전 기성용을 제외했고 정우영(29ㆍ알 사드)까지 부상으로 낙마했는데 황인범이 둘의 공백을 잘 메웠다. 그가 우즈벡전에서 기록한 패스성공률(91.95%), 볼 터치(113회), 전진 패스(7회) 등은 주세종(28ㆍ아산)에 이어 팀 내 2위였다. 특히 황인범의 창의적인 전진 패스는 전성기 시절 컴퓨터 플레이메이커라 불렸던 윤정환 세레소 오사카 감독이나, 고종수 대전 시티즌 감독을 연상케 했다. ‘용(기성용)이 떠난 자리에 범(황인범)이 등장했다’는 호평이 나온다.
황의조와 황인범은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을 발판 삼아 ‘인생역전’을 이뤘고 상승 기운을 대표팀에서까지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황의조는 아시안게임에서 폭발적인 득점력으로 인맥 논란을 단번에 잠재운 뒤 대표팀에서도 벤투 감독 부임 후 3골을 몰아치며 석현준(27ㆍ스타드 드 랭스)과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경찰 축구단인 2부 리그 아산 무궁화 소속이었던 황인범은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조기 전역한 뒤 대표팀에서 중원의 핵으로 떠올랐다. 둘은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에서도 중용될 것으로 보인다.
황의조는 21일 귀국 인터뷰에서 황선홍 전 감독을 연상시키는 타깃형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에 대해 “선수로서 영광이다. 황 감독님을 보고 자랐고 따라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내년에) 더 많이 골을 넣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전날 우즈벡전 후 “친구나 가족들에게 농담처럼 ‘인생의 운을 올해 다 쓴다’고 할 정도로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 그 운을 다 쓴 게 아니라는 걸 내년과 그 이후에도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던 황인범은 “9, 10월 A매치를 치르면서 기성용, 정우영 등 어렸을 때부터 동경하던 선수들과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며 ‘벤투호의 황태자’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감사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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