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운전대를 잡지 않겠습니다.”
6월 8일 서울 서초경찰서 교통조사계로 불려 나온 회사원 성모(30)씨가 경찰 앞에서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전달 20일 새벽 서초역 인근 도로에서 신호 대기 중 술에 취해 잠들어 있다가 경찰에 적발된 것에 대한 첫 피의자 조사 자리였다. 적발 당시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77%로 면허정지(0.05% 이상) 수준을 훌쩍 넘는 만취상태였다. “정말입니다. 차도 부모님께 보내겠습니다.” 그의 호소는 필사적이었다.
성씨는 상습 음주운전 전력이 있었다. 경찰이 확인한 것만 지난해 두 차례 음주운전과 올해 두 차례 무면허 음주운전. 이번에 적발됐을 때도 이미 앞선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기 때문에 구속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성씨는 며칠 뒤 차를 부모가 살고 있는 대구로 보냈다는 ‘탁송영수증’을 경찰에 제출하기까지 했다. 이런 노력 덕인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은 검찰에서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모든 게 성씨의 뜻대로 풀릴 듯 보였지만 6월 21일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분명 대구에 있어야 할 그의 차량이 서울 동부간선도로 과속카메라에 찍힌 것. 경찰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초구에 있는 성씨 오피스텔 근처에서 잠복했더니, 실제 성씨가 차를 끌고 주차장을 유유히 드나드는 모습이 포착됐다. 인근 폐쇄회로(CC)TV에도 성씨가 직접 운전하는 장면이 여럿 찍혀 있었다. 구속을 피하기 위해 둘러댄 거짓말이 들통난 것이다.
서초경찰서는 상습적으로 무면허 음주운전을 한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로 성씨를 구속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번에 적발된 무면허 음주운전 외에도 6월부터 9월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무면허 운전을 한 혐의가 추가됐다.
경찰 관계자는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탁송 서비스를 신청한 뒤 실제로 차를 보내지는 않고 탁송 기사에게 영수증만 6만원에 구입해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라며 “무면허 운전 사실이 더 있는지 추가로 수사해 검찰에 사건을 넘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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