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골품제 이후 지배계급 추적 ‘조상의 눈 아래에서’ 출간한 도이힐러 런던대 교수
“발전이요?” 눈이 안경 너머 허공을 잠시 더듬었다. 대꾸할 만한 적당한 표현을 고르는 듯했다. 뜸 들였다 말을 이었다. “한국 사회의 발전, 그건 참 까다로운 표현이지요. 발전이라기보다 ‘변했다’, ‘변화했다’가 좋겠습니다.”
저서 ‘조상의 눈 아래에서’(너머북스) 번역 출간 기념으로 지난 20일 한국을 찾은 해외 한국학 1세대 마르티나 도이힐러(83) 런던대 동양·아프리카 연구대학(SOAS) 명예교수가 내놓은 답변이다. ‘발전’이란 단어를 미묘하게 비껴가는 대답이다.
한국사 연구자들이 그간 내세운 건 우리 나름의 ‘역사발전 단계론’이다. 서구가 ‘고대 노예, 중세 봉건, 근대 자본’이라는 시대 구분을 통해 ‘1인의 자유가 만인의 자유로 심화ㆍ확대되어 가는 과정이 곧 역사’라는 관념을 만들어냈다면, 한국 역사학은 그에 대응해 ‘골품제, 귀족제, 관료제’라는 도식을 만들어냈다. 서구에 열등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게끔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뭔가 심화ㆍ확대되어가는 게 있었다는 얘길 하고 싶은 게다.
1992년 ‘한국의 유교화 과정’으로 각종 학술상을 휩쓸었던 도이힐러가 그 뒤 20여년을 준비해 2015년 하버드대출판부에서 출간한 ‘조상의 눈 아래에서’는 이 통념에 도전하는 책이다. 4, 5세기 신라 골품제에서부터 19세기 조선 말까지 지배계급의 역사를 추적한 끝에 내린 도이힐러의 결론은 “고유의 친족 이데올로기는 신분의 위계와 신분의 배타성을 찬미하면서 운명의 붉은 실처럼 신라 초부터 19세기 말에 이르는 한국 역사를 관통했다”는 것이다. 골품, 세족, 사족 등 시대에 따라 지배계급의 이름은 변했다지만 그것은 핏줄, 곧 ‘운명의 붉은 실’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도이힐러 교수는 “서양인이 왜 한국사를 공부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바로 이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강력한 부계 중심으로 작동하는 사회는 더러 있지만, 어머니 쪽 핏줄까지 따지는 ‘쌍계’에다 동생이나 사촌들까지 ‘문중’이라는 이름으로 묶은 친족 이데올로기가 이 정도로까지 강력하게 뿌리 내린 곳은 한국밖에 없다”면서 “그래서 외부인의 눈으로 보자면 아주 재미있는 현상들이 많이 벌어진다”고 덧붙였다.
재미있는 현상이란 이런 것들이다. 노비, 양민은 물론 서얼, 향리 등 구분을 통해 한국 지배층은 “고집스러운 사회적 차별”을 고수한다. 이런 전략을 통해 정권 교체는 물론 왕조 교체 같은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살아남는 “엄청난 내구력”을 발휘한다. 주자학과 과거제 같은 능력주의 원칙을 들여와 놓고도 그것이 “엘리트의 월권에 제약을 가하기는커녕 괄목할만한 방식으로 엘리트의 지배를 강화”하는데 쓰인다. 점잖은 학문적ㆍ문학적 수사를 걷어내고 날 것 그대로 말하자면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쪽 편이든 저쪽 편이든, 해먹는 사람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는 얘기다. 시각에 따라 도이힐러 교수의 책은 한국 지배층의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기록으로 읽힐 수도 있다. ‘발전’보다는 ‘응전’ 혹은 ‘변신’의 기록이다.
이런 시각이기에 책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들이 넘친다. 가령 고려의 권문세족(權門世族)을 도이힐러 교수는 권문(權門)과 세족(世族)으로 나눈다. 세족이 전통의 명문가라면, 권문은 원나라, 무인정권 등으로 잠깐 힘을 얻은 가문들이다. 그래서 고려 말 신유학의 도입을 통한 개혁 움직임이란, 실은 세족이 신유학을 무기로 권문을 찍어내는 과정이다. 고로, 조선 건국은 신흥사대부의 등장이 아니라 세족의 귀환에 가깝다. 16세기 문중의 탄생도 그렇다. 조선이 들여온 중국의 신유학이란 맏아들에게 모든 걸 주는 부계 중심제다. 하지만 진짜 이렇게 했다간 동생과 사촌들의 숱한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우리는 큰 한 가족이라는 관념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도이힐러 교수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조차도 문중의 승리로 해석한다. 국가의 참패는 문중이 지역기반을 더 단단히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의 함의는 무엇일까. 근대화로 신분제가 공식적으로 폐기된 뒤에도 여전히 그 잔향은 남아 있다. 도이힐러 교수는 “1960~70년대까지도 한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일부에선 여전히 그렇다”며 웃었다. 갑질, 맷값 등 ‘헬조선’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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