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주 칠금동 제철유적에서 백제시대 제련로 9기가 추가 확인됐다.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충주 탄금대(명승 제42호)의 남사면 구릉지를 대상으로 3차 발굴조사를 실시해 3~4세기 때 만들어진 제련로 9기를 찾았다고 21일 밝혔다. 연구소는 2016년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해 이번에 확인된 9기까지 총 20기의 제련로를 발견했다.
이번에 발굴된 제련로는 총 3개층으로 중첩해 축조됐다. 제련로가 수명이 다 되면 폐기 후 폐기물을 쌓고 그 위에 다시 제련로를 축조한 흔적으로 보인다. 제련로를 중첩해 축조한 것은 국내 첫 사례다.

제련로를 축조하기 이전에 바닥에 목재를 치밀하게 채우고 그 외곽으로 목재 말뚝을 박은 시설도 나왔다. 연구소는 “목조로 된 지하구조는 습기가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기존 조업면 바닥에 목탄과 점토, 모래를 채워 만드는 1차 방습시설 외에도 이중으로 방습시설을 조성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층별로 지하구조의 조성 양상이 변화했으며, 상층으로 갈수록 간단한 방식으로 축조된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철기술이 발달하면서 후대로 갈수록 폐기층 위에 조성돼 방습의 필요성이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연구소는 “장소를 옮기지 않고 한 지역에 중복적으로 철 생산이 가능했던 것은 주변에 다수의 철광산지가 있고 수로를 이용해 연료를 쉽게 조달했기 때문”이라며 “충주는 고대 백제뿐 아니라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 국내 제철생산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연구소는 조사를 주변 지역으로 확장하고 제철기술 복원실험, 자연과학적 분석과 민속조사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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