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 동생이 그러더라고요. ‘형은 되게 야비하기도 하고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걸 추구하고, 세속적인 거 같은데 어떨 땐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고. 뭐든 두려워 말고 재밌게 하세요. 형, 느껴져요’라고. 그 말이 너무 고마웠어요.”
가까운 동생의 이야기를 전하며 배우 유아인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평소 친구들과 돈독한 우정을 자랑하는 그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촬영하면서도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극중 투자자들을 모집하기 위한 연설 장면을 준비할 땐, 각 분야에 종사하는 다양한 친구들을 모아놓고 연습도 했다.
반응은? 유아인의 표현대로라면, ‘칼날’ 같았다. “괜찮긴 한데 좀 더 신선하게 해봐” “너무 뻔하지 않아?” 등의 피드백을 받으며 고민에 빠졌다. 유아인은 친구들의 조언 때문에 스트레스를 더 받았다면서도, “누구보다 냉정한 시선을 가진 관객들이다. 내가 더 좋은 연기를 펼치길 바람에서 하는 조언들이라 무척 고맙다”고 했다.
유아인은 연예계에서 크게 사교적인 편은 아니다. 스스로도 배우 친구들이 많지 않다고 말한다. 동료들과 술자리를 갖거나 함께 여가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적은 편이다. 하지만 그에겐 배우가 아닌 일반인 친구들이 많이 있다.
“(친구들이) 자기 경험을 들려주고 자신의 삶을 보여주고 충고해주는 모든 것들이 제가 연기를 하고 캐릭터를 선보이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 연기의 밑천이 된다고 할 수 있죠.”
지금껏 다채로운 캐릭터들에 도전하며 유아인의 앞에는 많은 수식어가 붙었다. 그렇다면 그가 원하는 수식어는 어떤 걸까? 역시, 현명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배우요. 제가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 제 안의 다양한 느낌들을 표현했을 때 붙는 수식어들이 자연스럽고, 그동안 없던 수식어가 붙어도 기대할 수 있는 배우로 다가가고 싶어요.”
“제 작품이 하나가 아닌 것처럼, 오늘만 있고 이 순간만 있는 게 아닌 것처럼…다양한 기대를 품을 수 있는 배우가 되면 어떨까 생각이 드네요.”
유아인은 ‘국가부도의 날’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과감히 사표를 던지는 금융맨 윤정학을 연기한다.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IMF 사태를 예측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유아인의 비중은 큰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작품의 메시지에 집중했다. 시나리오가 술술 읽혔고, 강한 흥미를 느꼈다.
“IMF라는 과거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 이야기가 공감대를 이루기에 충분한 소재이고 여러 세대들, 어떤 계층에 있고 어떤 정체성을 가졌건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을만한 이야기라 생각했어요.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돈이 도대체 뭐야?’라는 의문을 품어본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런 고민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죠.”
유아인은 IMF 사태 당시 어렸고, 그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동세대나 더 젊은 세대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함에 있어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이 작품을 택했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윤정학에 대해선 캐릭터적 성질로 보여지기보다는 여러가지 판단이나 고민을 통해 공감대를 이루는 측면으로 바라봤다고 했다. 윤정학은 인간적으로 어떤 면에선 지탄 받을 수 있고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우리 안에 내재된 욕망과 갈등들을 바라본다면 공감이 가능한 인물이다.
“윤정학의 마음을 제 마음 속에서 길어 올렸어요. 저 역시 기회주의자일 때가 있고, (이 말을 하며 유아인은 웃었다) 잃기보다 갖고 싶고, 놓치기보다 쥐고 싶고 그런 사람으로서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온전히 행복하고 유쾌하고 좋지만은 않거든요. 죄책감이 들거나 후회가 되거나 회한에 젖어들 때도 있죠. 내가 잘 살고 있나 생각이 들고. 그런 저 자신을 통해서 주변을 이해하고 들여다보게 되는 거 같아요. 윤정학은 평범하지만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형태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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