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법관 탄핵” 촉구 결의… “정치 소용돌이” 반대 의견도 거세
전국의 판사 대표 100여명이 사법농단 연루 판사에 대해 사실상 ‘탄핵 촉구’를 결의한 것은 재판 개입 등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 수뇌부와 법원행정처의 일탈행위가 전례가 없다는 인식과 함께 사법부 신뢰 문제와 직결된다는 절박감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소장 판사 주도로 동료 법관 파면을 요구한 것인 데다 탄핵이 이뤄지려면 소추 대상자를 선정하는 등 예민한 문제가 남아 있어 법관사회가 심한 내홍을 겪게 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전국법관 대표회의(의장 최기상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가 19일 ‘재판독립침해 등 행위에 대한 우리의 의견’ 결의문에서 드러낸 사법농단 사태 인식은 사뭇 엄중하다. 일선 재판과 관련해 정부와 진행 사항 논의나 정부를 위한 재판 자문, 특정 재판 개입 등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사법부 수뇌부나 법원행정처 행위를 ‘중대한 헌법위반’으로 못 박았다. 이는 지난 9일 법관 탄핵을 최초로 제안한 대구지법 안동지원 6명의 판사들이 “어떻게 하면 무너져 내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탄핵소추를 촉구한 제안문 내용을 대부분 수용한 것이다. 결의문 채택과 관련해 법관회의 공보간사를 맡은 송승용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과 탄핵소추 절차를 촉구하지 않는 게 법관회의의 중요한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라는 찬성 의견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장 판사들의 동료 판사 탄핵 촉구 결의가 법관 사회 내부에 미칠 충격파가 적지 않을 전망이다. 가뜩이나 검찰 수사와 관련해서도 노장 판사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던 상황에서 노ㆍ소장 판사 갈등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이날 회의는 세시간 가까이 격론이 이어졌지만 찬ㆍ반 의견이 거세게 맞섰다. 이 결과로 105명이 참가한 투표에서 과반수인 53명이 찬성표를 던졌고, 43명이 반대표, 9명은 기권했다. 박빙에 가까운 우세로 의결안이 통과된 셈이다. 송 부장판사는 “탄핵소추는 고도의 정치행위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탄핵소추는 국회의 의무이기 때문에 사법부가 이를 촉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대 의견이 나왔다”고 말했다. 일부 판사는 “탄핵 사유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법원이 국회에 이를 요구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의결안이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법관 대표기구가 공식적으로 탄핵 검토를 요구한 만큼 박주민 의원 등 진보 성향 여당 의원과 진보단체 중심으로 목소리가 높았던 탄핵 소추 움직임이 국회 차원에서 본격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판사 등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의 동의로 발의가 가능하며 소추안에 국회의원 재적 과반이 찬성하면, 헌법재판소는 곧바로 탄핵심판 절차에 돌입하게 된다. 대통령 탄핵과 마찬가지로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이 찬성하면 파면이 최종 결정된다.
다만 후속 과정이 순탄치는 않다. 구체적인 탄핵 대상을 선정하는 문제 등을 두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이어지며 법원 조직이 또 한번 출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안동지원 판사들은 “명백한 재판 독립 침해행위자”라며 시민단체가 탄핵소추 대상으로 지목한 6명의 현직 법관을 의식한 듯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이는 결의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송승용 부장판사는 “국회가 탄핵소추하고 헌법재판소 심판절차가 이뤄져야 하는데, 사법부에서 헌법 위반에 대해 논의하며 구체적으로 소추 대상이 누구인지 말하는 것 자체가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파면 대상 판사를 가리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법관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두 차례 발의되기는 했으나 해방 이후 한번도 통과된 적이 없는 사문화 조항이나 다름 없어 여야 간에 정치적 합의를 기대하기도 난망한 일이다.
실제로 이날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법농단 연루 법관에 대한 탄핵 추진을 검토해볼 수 있다는 입장을,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법관 탄핵 추진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사법부 독립 훼손을 이유로 기존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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