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을 국내산으로 속이거나
특정 브랜드 붙여 비싸게 판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손모(50)씨는 겨울을 맞아 사무실에서 쓰기 위해 C사의 전기히터 5대를 대당 17만원에 구입했다. 비슷한 성능의 다른 회사 제품보다 비쌌지만 ‘자연햇빛과 같은 효과의 인공태양’이라는 제품 설명을 보고 그만큼의 값어치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품이 도착한 뒤 C사 로고와 모델명이 적힌 스티커가 아무래도 조잡해 떼어내고 손씨는 뒤통수를 맞은 듯 놀랐다. 유명 브랜드인 신일사 로고가 떡 하니 등장한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해보니 신일사는 똑같이 생긴 전기히터를 절반 가격인 9만2,000원에 팔고 있었다. 멀쩡한 브랜드에 스티커만 붙이는 조악한 눈속임으로, 비쌀수록 좋을 것이라고 믿는 소비자를 노린 일종의 ‘고가전략 사기’였던 셈이다.
손씨는 C사 해명을 듣고는 더 어이가 없었다. 처음에는 “성능이 다르다”고 발뺌하더니, 나중에는 “똑같은 제품이라도 백화점과 마트 판매가격이 다르지 않느냐”고 변명했다. 심지어 “인공태양이라는 브랜드 가격이 추가된 것”이라고 우겼다. 손씨는 “업체 얘기를 들을수록 제품을 실제로 생산한 곳인지도 의심이 가더라”라며 “그대로 믿고 사는 소비자만 호구”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일명 라벨갈이 사기가 여전히 판치고 있다. 상표와 상품정보가 담긴 라벨을 바꿔 다른 회사 제품인 것처럼 속이거나, 특정 브랜드의 라벨 스티커를 붙여 파는 지극히 단순한 사기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중국 동남아 생산 제품을 ‘국내’에서 만든 것처럼 속여 팔고 △동대문 같은 도매상에서 옷을 산 뒤 특정 브랜드 라벨을 붙여 백화점에서 팔고 △내륙에서 도축된 돼지고기에 ‘제주산’이라는 설명만 붙여 브랜드 돈육으로 둔갑시키고 등은 알려진 수법. 요즘엔 버젓이 판매 중인 국내산 제품에 다른 회사 ‘스티커’만 붙여 더 비싼 가격에 팔고 있다. 개당 150원짜리 마트 쿠키를 포장만 새로 해 유기농 수제쿠키라고 속여 개당 450원에 직거래한 ‘미미쿠키’ 사건 역시 라벨사기 범주에 속한다.
라벨갈이는 사전 단속이 어렵다는 맹점을 노린다. 소비자보호원 등에 피해자가 신고를 해야 경찰이나 관계기관이 수사에 착수하는 식이라, 제보 없이는 모든 제품의 상표도용 여부를 일일이 검열할 수가 없다. 특수사법경찰 관계자는 “상습 의류 라벨갈이 현장은 불시단속하기도 하지만, 다른 분야는 미리 적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피해자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다.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은 “‘속여 팔면 걸린다’는 심적 부담을 판매인들이 갖도록 해야 한다”라며 “피해를 당한 개인이 혼자 대응하는 게 어렵다면 소비자시민단체를 통해 법률 조언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라벨을 손상시키지 않고 증거자료를 확보해 두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