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6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삼성 애널리스트 데이’가 열렸다. 국내외 기관 투자자와 애널리스트 등 400여 명이 참석했는데,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한 참석자를 인용해 ‘언론 비공개 세션에서 접히는 디스플레이 영상을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이후 5년이 흐른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삼성전자는 폴더블(Foldable)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스마트폰을 최초로 공개했다. 내년 초 폴더블 시대 개막을 예고한 삼성 폴더블폰의 시제품이다.
5년 전 애널리스트 데이에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현 회장)은 “접히는 디스플레이가 2015년에 나올 것”이라 했고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현 삼성전자 DS부문장)도 “2, 3년 뒤 접었다 펴는 게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폴더블폰 출시에는 당시 예상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삼성 폴더블폰에 대한 반응은 아직까지 호의적이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이란 새로운 폼팩터(구조화된 형태)를 제시한 뒤 10년이 흐르며 소비자는 현재의 스마트폰에 무덤덤해졌고, 시장은 침체 일로다. 어떤 식으로든 스마트폰의 진화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중국 디스플레이 스타트업 로욜(Royole)이 세계 최초 폴더블폰으로 발표한 ‘플렉스파이’에 시큰둥했던 글로벌 업계가 삼성 폴더블폰에 기대감을 갖는 것은 디스플레이 제조사가 삼성디스플레이란 것도 중요한 이유다.
삼성전자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는 2007년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양산을 시작했고 현재 글로벌 시장의 90% 이상을 점령했다. 2014년 9월 한쪽 면 엣지(갤럭시노트4)와 이듬해 3월 양면 엣지 디스플레이(갤럭시S6)도 처음 선보였다. 폴더블 디스플레이도 완성도는 물론 수익을 낼 수 있는 수율 면에서도 당장 경쟁자를 찾기 힘들다.
독보적인 디스플레이를 확보하고도 삼성전자가 폴더블폰 공개에 뜸을 들인 까닭은 결국 시장성이다. 가격 장벽도 넘어야 하지만 펼친 화면으로 어떤 사용자경험(UX)을 제공할 수 있느냐가 더 문제였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을 이끄는 고동진 사장이 지난 8월 미국 뉴욕에서 국내 언론과 가진 간담회에서 “세계 최초 타이틀보다 지갑을 열 수 있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출시 초기에야 화면을 펼치면 주변 시선이 집중되겠지만, 새로운 폼팩터에 대한 관심은 일시적이다. 엣지 디스플레이도 한동안 심미적으로 주목 받았을 뿐이지 그 이상의 가치는 제공하지 못했다.
폴더블폰의 펼친 화면비는 4.2 대 3이다. 화면을 꽉 채운들 16대 9나 2.35대 1 비율 영상에 익숙한 사용자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그렇다고 게임 등 특정 콘텐츠에 집중하면 대중성은 물 건너 간다. 삼성전자가 폴더블폰용 사용자환경(UI) ‘원 UI’에 3개의 앱을 동시에 실행하는 멀티태스킹(다중작업) 기능을 넣은 것은 태생적인 화면 비율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전략으로 읽힌다.
올해 3분기 삼성 스마트폰은 약 20%의 점유율로 위태로운 글로벌 1위를 지켰다. 애플을 꺾은 화웨이는 3분기 출하량을 지난해보다 30% 이상 늘렸지만 삼성은 15% 줄었고, 세계 최대 시장 중국 판매량은 100만대 안팎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20%였던 중국 시장 점유율은 잘해야 1% 수준이다.
위기의 순간 꺼내든 폴더블폰은 향후 삼성 스마트폰 사업의 바로미터가 된다. 삼성전자가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콘텐츠 기업들과 협력하고, 앱 개발자용 테스트 도구를 사전에 공개한 것도 폴더블폰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 절박함과 무관하지 않다. 10여 년 전 애플이 그랬듯 새로운 폼팩터에 먼저 뛰어든 자의 숙명이다.
폴더블폰만의 가치를 제시하는데 성공하면 새로운 시장과 혁신 기업이란 찬사가 따라오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초고가 스마트폰 하나를 내놓는 데 그칠 수도 있다. 폴더블폰을 공개하며 삼성전자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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