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려 끼쳐 송구…지혜롭게 마무리 되길”
양승태 지시ㆍ법관 탄핵 물음엔 즉답 피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수장을 지내며 재판개입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 박병대 전 대법관이 19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이날 오전 9시23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모습을 드러낸 박 전 대법관은 “법관으로 평생 봉직하는 동안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법원행정처장으로 있는 동안에도 그야말로 사심 없이 일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번 일로 많은 이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경위를 막론하고 많은 법관들이 자긍심에 손상을 입고 조사를 받게까지 된데 대해서 대단히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거듭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튼, 이번 일이 지혜롭게 마무리돼서 우리 국민들이 법원에 대한 믿음을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박 전 대법관은 ‘사법행정권 남용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나’, ‘재판거래가 직무행위라고 생각하는가’, ‘법관 탄핵 이야기가 나오는 데 책임을 느끼는가’ 등 다른 물음에는 “사심 없이 일했다는 것을 거듭 말씀 드리는 것으로 답변을 갈음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민중당 관계자 등이 검찰청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박병대를 구속하라”, “양승태를 구속하라” 등 구호를 큰 소리로 외쳤지만 박 전 대법관은 답변 내내 흔들림 없는 자세를 유지했다.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 전 대법관은 ▲옛 통합진보당 관련 소송 등 재판개입 ▲법관 사찰 ▲비자금 조성 등 여러 사법행정권 남용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특히 일제 강제징용 소송 지연 등이 논의된 2014년 10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회의에 직접 참석하고, 이듬해 8월 양 전 대법원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대를 위해 ‘국정운영 협력사례’로 내세울 만한 판결을 직접 선별하는 등 청와대와의 ‘물밑 거래’를 주도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 5개월 간 확보한 증거와 진술을 토대로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 여부 등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검찰은 사법농단의 실무책임자 역할을 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기소하면서, 박 전 대법관을 약 30개의 범죄사실의 공범으로 적시했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조사상황에 따라 구속영장까지 청구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의 후임 법원행정처장인 고영한 전 대법관을 조만간 소환할 계획이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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