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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수의 마음의 窓] 수치심ㆍ자존감에 민감한 동양문화… 선동열 감독이 사퇴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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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수의 마음의 窓] 수치심ㆍ자존감에 민감한 동양문화… 선동열 감독이 사퇴한 이유

입력
2018.11.19 19: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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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얼마 전 국가대표 야구팀의 선동열 감독이 사표를 냈다. 선 감독은 아시안게임 야구 우승을 이끌어냈음에도 선수 선발과정의 공정성 논란으로 국회 청문회에 불려 나갔다. 아시안게임 출전 선수에게 우승 대가로 군대 면제 혜택이 주어지면서 세간의 문제가 됐기 때문이었다.

선 감독이 2020년 올림픽까지 야구감독을 맡기로 계약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 청문회 후 사표를 던진 이유는 국회 청문회에서 있은 한 의원의 발언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선 감독은 사표의 변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참담함’을 토로했다. 자존심이나 자부심에 큰 손상을 받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미국 심리학자 폴 에크만은 인간의 감정은 기쁨, 슬픔, 분노, 놀람, 공포, 역겨움이라는 6가지 기본 감정(basic emotion)이 있다고 했다. 이 감정들은 문화나 인종에 관계없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가지는 감정이라고 했다. 즉 주위 환경과는 관계없이 인간 내부에 내재된 감정이다.

하지만 이런 기본 감정 외에 수치심, 죄책감, 자부심, 부끄러움 등과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있는데, 이는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쳐지는지에 대한 인식, 즉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복합 감정이 생기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측면에서 선 감독이 최근에 느낀 심정은 지금까지 선수와 감독으로 자신이 쌓아온 명예뿐만 아니라 인간의 도덕성마저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혼재된 복합적인 감정이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서양문화에서는 복합 감정 가운데 죄책감을 중요시하는 반면, 동양에서는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서양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은 후 생긴 기독교의 종교적 원죄의식에서 비롯된 죄책감이 서양문화의 중요한 감정의 하나가 되었다. 따라서 서양사람들은 유독 죄책감에 예민하다.

이에 비해 동양은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인간관계에서 사회적으로 정형화된 유형을 중요시했고, 이를 벗어난 경우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는 문화로 정착된 듯하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비슷한 감정인 것 같지만, 서로 다른 감정 상태이다. 최근 한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동료가 자신의 잘못된 조언에 따라 경제적 손실을 입었을 때에는 죄책감을 느끼는 반면, 자신의 잘못된 조언을 동료가 거부하였을 때는 수치심을 느낀다.

기능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 기능을 검사하면 죄책감을 느낄 때는 상대방 마음을 추정하는 능력인 마음이론(theory of mind)이나 인지적 조절과 관련된 뇌 부위가 더 활성화한다. 이런 결과는 죄책감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나타나는 감정인 반면, 수치심은 자기본위적(self-referential)에서 시작되며, 자신에 대한 가치 판단과 관련이 있다.

‘아시아게임 금메달이 그렇게 어려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든지 ‘유능한 선수가 유능한 감독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등 청문회에서 국회의원의 발언은 국내 야구 역사상 지존의 자리를 지키며 감독으로서도 명성을 쌓은 선 감독의 자존심을 크게 손상시켰을 것이다. 선 감독은 수치스럽고 부끄럽게 국가대표 감독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보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고, 개인의 명예보다 평생 자신이 몸바쳐온 집단의 자존심과 선수들의 명예를 지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요즘 급변하는 사회상황에서 우리는 비굴한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로 자신의 명예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많이 봐 왔다. 비록 이번 사태가 우리 야구 역사에 오점으로 기억될 수 있겠지만, 필자에게는 선 감독이 사표를 던진 것은 나름 가치 있는 결단으로 여겨진다. 우리 사회에 선 감독처럼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철학과 자존감을 지키려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좀 더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지 않을까.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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