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영국의 한 음악인이 ‘노 뮤직 데이(No Music Day)’란 걸 제안했다. 11월 21일 만 하루를 음악 없이 지내보자는 것, 음악을 듣지도 연주하지도 방송하지도 말자는 거였다. 동명의 웹사이트에 저 제안을 올리며, 그는 취지나 의미, 실천 지침 등을 일절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를 듣거나 본 수많은 이들이 그 제안에 동조하며 웹사이트에 글을 남겼다. 그러면서 거기에 각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했다.
제안자는 80년대 아방가르드 보컬밴드 ‘KLF’를 이끌며 영국 팝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끈 괴짜 음악인 빌 드러먼드(Bill Drummond, 1953~)였다. 그는 뮤지션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92년 5월 돌연 KLF를 해체하고 자신들의 음반 일체를 회수ㆍ삭제한다고 선언했다. 그 결정의 이유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93년 예술재단 ‘K-Foundation’을 설립하고 재단 예술상을 제정했다. ‘올해 최악의 아티스트(Worst Artist of the Year)’에게 수여하는, 상금 4만 프랑의 상이었다. 첫해 수상자는 93년 여성 최초 터너상(상금 2만 프랑) 수상자인 조형미술가 레이철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였다. 화이트리드는 흔쾌히 K재단예술상을 받았다. 드러먼드의 괴짜 행각은 94년 8월, 스코틀랜드 유라 섬의 한 보트하우스에서 “KLF 시절 번 돈 중 남은 돈” 100만 파운드를 불사른 거였다. 그리고 내놓은 게 ‘노 뮤직 데이’. 11월 21일은 사순절 금욕이 시작되기 전날, 즉 음주와 가무를 즐기는 ‘기름진 화요일(Mardi Gras)’이다.
이듬해 음악 전문방송 ‘Resonance 104FM’이 그의 제안에 동조, 음악의 일상적 의미를 반추하는 토론 등으로 종일 프로그램을 채웠고, 이듬해에는 BBC라디오가 동참했다. 그의 이벤트는 언론 등에 소개되며 미국 브라질 등 여러 나라로 확산됐다. 거리의 악사들도 다수가 동참했고, 문을 닫는 음반가게도 많았다고 한다. 비평가들은 존 케이지의 작품 ‘4분 33초’를 언급하기도 하고, 대중복제시대의 병폐를 거론하기도 했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음악을 통해 뭘 원하고 뭘 원하지 않는지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당초 그의 제안은 5년만 유효(2005~2009)한 거였지만 이후로도 오늘은, 어떤 이들에겐, 음악이 각별한 날이 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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