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키지도 않았는데 배달 나갔다고 해달라”
고용주, 사망한 아이 친구에 허위사실 요구도
면허도 없는 10대에게 반강제로 오토바이 배달을 시켜 아이가 사망에 이르렀다면 해당 업주는 현행법상 어떤 처벌을 받을까. 놀랍게도 제대로 된 형사처벌 조항이 없어 고작 30만원의 벌금(고용주의 의무 등을 규정한 도로교통법 56조 위반)으로 끝난다. 더구나 업주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수사기관에 거짓말을 일삼으며 산업재해 처리를 방해한 사례도 있다. 이 같은 현실에 배달 중 사망한 청소년들의 유가족은 “어린 자식의 죽음에 대해 이 정도의 처벌이 전부인가”라며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사망한 아이 친구에 거짓말 요구한 업주
김은범(17)군은 지난 4월 8일 오후 6시쯤 배달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은범군의 친구이자 같은 식당에서 배달하고 있던 정지훈(가명)군은 친구의 비보를 듣고 울면서 응급실로 달려가던 중 고용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정군은 “사장님이 ‘은범이가 가게에 놀러 왔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간 거로 해달라’고 말했다”라며 “경황이 없어 전화를 대충 끊어버리자 다시 걸려 온 전화에선 ‘은범이가 배달을 시킨 게 아닌데 갑자기 음식을 담아 오토바이를 타고 나갔다고 해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사고를 인지한 직후 사업주는 책임을 회피할 허위사실을 만들고 진술을 부탁한 것이다.
사장의 거짓 증언은 경찰 조사에서도 지속됐다. 사건을 담당한 제주경찰청 관계자는 “고용주는 조사에서도 줄곧 배달 일을 시킨 적이 없다고 했지만 같이 일한 직원들의 말은 달랐다”라고 했다. 사장이 서빙을 하던 은범군에게 무면허 배달을 강요했던 상황을 정군은 자세히 진술한 것이다.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뒤에도 고용주의 뻔뻔함은 강도를 더했다. 유족 측 변호사는 “지난 7월 검찰이 마련한 형사조정위원회에서 고용주가 사과 한마디 없이 ‘오토바이를 갑자기 그냥 몰고 나갔다’고 주장했다”라며 “그러더니 ‘그 나이 애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 한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어머니와 함께 어안이 벙벙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보통 합의의 경우 금액이 문제인데 사과도 없고 안하무인 태도로 나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순식간에 형사조정위원회가 끝나버렸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5일 사망한 유다윗(15)군의 고용주도 사고 당일 병원에서 만난 다윗군 아버지 유재천씨에게 “아드님이 배달일 끝내고 퇴근하던 길이었다. 면허가 있는 줄 알았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장례식장에서 유군의 중학교 선배인 최한별군이 유씨에게 “다윗이 사고가 나기 전 마지막 배달을 한 뒤 나를 잠시 만났고, ‘가게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말한 후 돌아가다 사고를 당했다”라고 말한 뒤에야 유씨는 업주의 거짓말을 알게 됐다.
사건을 담당한 노무사는 “산재 책임을 면하기 위해 업주가 퇴근길이었다고 거짓말을 꾸며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만 해도 퇴근길에 발생한 산재는 인정되지 않았다. 고용주는 또 근로복지공단 측에 “다윗군이 사고가 난 날은 보호관찰 면담이 있다고 이야기했다”고 주장했으나, 담당 노무사가 법원에 확인 결과 그날은 면담 일정이 없었다. 다윗군은 그해 족발 가게에서 배달하다 적발된 후 부모 의사에 따라 보호관찰을 받던 중이었다. 노무사는 “보호관찰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업주가 변명을 지어낸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거짓 증언에는 직원들도 동원됐다. 해당 가게에 일하던 직원은 “내가 사장님 휴대폰으로 다윗군과 통화했고, 그냥 퇴근하라고 지시했다”라고 말했다. 노무사는 “사고 발생 시간이 토요일 저녁으로 가장 바쁠 때인데 직원이 사장 허락 없이 퇴근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부당하기에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무면허 배달 지시…과실치사 아니다?
검찰은 애초 김은범군 사건에서 고용주의 태도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무면허 고용에 대한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와 함께 이례적으로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적용토록 경찰에 지휘했고, 실제 과실치사 혐의도 포함돼 사건이 송치됐다. 무면허임을 알면서도 배달하도록 해 죽음에 이르게 한 점에 대해 고용주의 과실이 크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업무상과실치사죄는 ‘혐의없음’으로 결국 불기소됐다. 제주지검 관계자는 “무면허임을 알면서 고용한 점이 사고를 불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고가 사망에 이를 것이라 예측하기는 어렵다”라며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과 사고로 사망한 사실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성립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김대근 박사는 “업무상과실치사의 판례는 운전자 부주의로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의료사고 등 과실과 사망의 인과관계가 직접적인 경우”라며 “고용주의 무면허 운전자 고용이 사고에 이르고 또 그 사고가 사망에 이르는 두 단계에 대해 인과관계를 따지기 게 힘들다는 것이 법리적 해석”이라고 말했다. 교사와 방조 혐의 역시 ‘배달 사고’ 자체가 운전자의 고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서 고용주가 이를 부추기거나 방조했다는 사실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결국 고용주는 도로교통법 제56조만 인정돼 약식 기소됐다. 김은범군이 타고 다닌 오토바이는 125㏄ 이하 원동기장치로 벌금은 30만원에 불과했다. 이 소식을 접한 어머니 장모씨는 “사람이 죽었는데도 어떻게 벌금이 겨우 30만원 뿐인가”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위험천만한 배달업에 부모 동의 없이 10대를 고용한 부분은 아예 형사처벌을 비껴갔다. 현행법상 18세 미만 청소년 고용에는 친권자 동의가 필요하지만 어겨도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며, 고용노동청에서 과태료만 부과하게 돼 있다. 유다윗군의 아버지는 “경찰에 어린아이를 맘대로 고용한 점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 달라고 탄원서를 쓰는 등 노력했지만 경찰측은 ‘교통사고인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짜증을 냈다”라고 말했다. 당초 수사대상이었던 업주가 급사하는 바람에 30만원 벌금형조차 집행되지 않았다.
고용주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유족은 민사소송에라도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노무사에 따르면 가게 측은 산재 인정을 빌미로 민사소송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고, 실질적 경영을 맡았던 업주의 아내는 현재 민사소송과 관련된 어떤 연락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이 가게는 사고 당일에도 심야까지 문을 열었고, 현재까지도 영업 중이다. 유씨는 “진심으로 사과만 했어도 소송까지 갈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무면허 10대를 고용해도 처벌할 길이 없는 현행법 아래 가족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퇴근길 여자친구 태웠다 산재 인정 안 돼
올해부터 퇴근길 사고도 원칙적으로 산재로 인정받게 됐지만, 지난 4월 사망한 윤상민(가명ㆍ17)군은 ‘배달 콜’을 기다리다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다줬다는 이유로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근로복지공단 고양지사가 유족에게 보낸 처리 결과 문서에는 “고인은 콜이 22시 40분까지 뜨기를 기다렸다가 여자친구를 만나는 등 약 1시간 가까이 사적 행위를 하였고, 여자친구를 태워주고 다시 통상의 경로로 돌아오는 행위도 출퇴근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공단 관계자는 “여자친구를 오토바이를 타고 약 11분 거리인 집으로 데려다준 사실이 있어 이는 사적 행위 또는 일탈행위에 해당해 통상의 출퇴근 재해로 인정하지 않아 부지급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윤군이 여자친구를 만난 장소는 배달기사들이 콜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편의점이었다. 업주는 “상민이가 작업을 마치고 (여자친구와) 이야기만 했다”고 발뺌했으나, 동료는 “콜이 뜰 때까지 기다렸다”고 했다. 또한 윤군측 김상군 변호사는 “동료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자친구 집이 오토바이로 3분 정도밖에 안 걸리고 주도로에서 여자친구 집까지 불과 몇백 미터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퇴근할 때 친구나 동료와 이동하며 태워주기도 하는데, 그게 인정이 안 된다면 사람이 아니라 기계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더구나 ‘카풀’은 퇴근 경로 이탈로 보지 않고 산재가 인정된다”고 비판했다. 또 공단측에 왜 이렇게 처리가 늦는지 문의하면 그때야 담당자가 상민군과 함께 일했던 동료 연락처를 묻는 등 사건 처리에 수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공단 담당자는 “사업자와 재해자측 의견이 많이 달라 시간이 걸린 것”이라고 했다.
유다윗군 사망사건도 업주의 방해로 산재를 인정받기까지 6개월이나 걸렸다. 고용주는 “사고 당시 우리 가게가 아닌 다른 가게 배달을 갔을 수 있으니 조사해봐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한 이유가 컸다. 일방적으로 배달대행업체에 소속돼 일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 뒤 이를 무조건 조사해야 한다고 우긴 것이다. 노무사는 “억지 주장에 유군의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배달대행 앱은 모두 지운 상태여서 업주 주장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라고 말했다. 이후 업주는 사고 난 동선이 집으로 향하던 길이라고 주장하는 등 끝까지 책임을 부정했다.
김은범군 유가족도 지난달 산재를 신청했지만 업주는 버티기에 돌입했다. 담당 조사관의 연락에 한 달 가까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최근에 사업자등록증상에 있는 사장 남편 명의로 근로 관계에 대한 입증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공문을 보냈지만 응답이 없다”라며 “전화도 받지 않아 최근 자택에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지난달에는 사고가 났던 가게를 갑자기 폐업했고, 베트남 여행을 다녀오는 등 부재중이어서 조사가 늦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업주들이 10대 배달원들의 산재 조사에 협조적이지 않은 데 대해 “산재로 인정받으면 고용주의 산재보험료가 할증되기 때문에 업주가 꺼릴 수 있고, 당국의 감독이 들어올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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