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조세현 사진작가 운영
노숙인 대상 사진전문학교 졸업식
32명 사각모ㆍ가운 입고 ‘감격’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왔는데, 사각모를…”
서울시가 조세현 사진작가와 함께 노숙인을 대상으로 운영한 사진전문학교를 15일 졸업한 김모(59)씨의 말이다. 김씨는 “언제 이렇게 인간다운 대접을 받아 봤는지”라며 “사각모는 대학 졸업생들이나 쓰는 것으로 알았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이어 그는 “내가 사각모를 쓰고 졸업을 하다니 꿈이 분명하다”며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서울시와 사단법인 조세현의 희망프레임이 함께 진행한 전국 최초의 노숙인 사진전문학교 ‘희망아카데미’ 3기 졸업식이 15일 중구 세종대로 시청 로비에서 열렸다. 졸업식에는 32명의 3기 졸업생들 전원이 ‘사각모’를 쓰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희망아카데미는 시와 조 작가가 2012년부터 사진에 관심이 있는 노숙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진 초ㆍ중급 교육과정인 희망프레임의 심화과정이다. 희망아카데미는 2016년 시작해 첫해 30명, 지난해 30명에 이어 올해 3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전문학교 졸업생으로서 이들의 자존감을 높이자는 취지로 올해 졸업식에서 ‘사각모’와 졸업가운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그렇다면 사진교육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지난 13일부터 이날까지 광화문광장 해치마당에 전시된 이들의 작품 32점은 고목, 석양의 바다, 한강 다리 등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한 눈에 보기에도 예술교육을 통해 성숙한 균형감과 감수성이 돋보였다.
예술교육은 이들이 자활의지를 다지는 계기도 됐다. 졸업생 이모(56)씨는 “내가 피사체를 어떻게 보고 셔터를 눌렀느냐에 따라 사진은 다르게 표현된다”며 “사진교육을 받는 어느 날 내가 찍은 사진처럼 내 과거 역시 내가 만든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고, 내 탓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 순간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며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일부터 알아보려고 노숙인 일자리 지원센터에 일자리를 신청했다. 직업을 얻으면 작게나마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흔쾌히 이들의 멘토가 돼주겠다며 강의를 했던 최열 환경재단 대표(환경), 김재련 변호사(법과 생활), 피아니스트 노영심(음악)씨 등도 이날 졸업식에 참석했다. 혜민 스님(문화와 인생)도 이들에게 강의를 했으며 노정균 신경정신과의원 원장, 최영아 시립서북병원 내과전문의는 무상진료를 했다.
앞으로 시는 희망아카데미 우수 졸업생이 ‘희망사진관’에 참여하는 등 일자리를 얻어 자립할 수 있도록 후원할 예정이다. 희망사진관이란 노숙인 사진사들이 시의 허가를 받아 사진기와 인화기 등의 장비를 갖추고 다니며 관광객 등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비용을 받는 자활사업으로, 시는 최근 광화문광장에 1호점을 낸 데 이어 2호점에 적합한 곳을 물색중이다. 황치영 시 복지본부장은 “시는 희망아카데미와 함께 이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며 “이 분들의 사회 복귀에는 시민들의 관심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은 “사람이 살다 보면 절망에 빠질 때도 있고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 본인이 원치 않지만 어떤 덫에 갇히는 수도 있다”며 “그게 운명의 장난이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리 혼자 노력해도 빠져나올 수 없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어 “사진기 속에 절망을 담을 수도 있고 반대로 희망을 담을 수도 있다”며 “그런데 여러분은 희망을 선택했다. 너무 잘했다”고 이들의 졸업을 축하했다.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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