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수 있는 책이라곤 의사인 부모님 덕에 집에 있던 의학 서적과 당시 집집마다 구비하고 있던 ‘마오쩌둥 선집’뿐. 이런 환경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 과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1967~1977) 학창시절을 보낸 소설가 위화(58)는 이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인생’과 ‘허삼관 매혈기’ 등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위화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중국 소설가로 불린다. 그가 어떻게 읽고 쓰며 소설가가 됐는지, 그가 생각하는 문학이란 무엇인지 담겨 있는 책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이 나왔다. 세계 곳곳에서 독자와 만난 강연을 엮은 에세이다.
위화는 ‘마오쩌둥 선집’의 주해에서 읽는 재미를 발견한 소년이었다. 여타 혁명 책들과 마찬가지로 “감정은 없었지만, 주해에는 이야기와 사건과 인물이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문화혁명 후기에 접어든 고등학생 때는 서양 소설 책도 ‘몰래’ 빌려 읽을 수 있었지만, 서문과 결말이 뜯겨져 나간 경우가 많았다. 결말을 알 수 없는 소설을 읽은 것이 상상력 훈련법이었던 것 같다고 그는 회고한다.
천상 이야기꾼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만큼 솔직하고 재미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소설가의 입에서는 ‘꼰대 발언’이 나오지 않는다. 그는 그저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 훌륭한 독자가 되라고 말한다. 그래서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에서는 훌륭한 독자이기도 한 위화를 만날 수 있다. 처음 소설을 쓸 때 그는 문학잡지를 마구잡이로 펼친 뒤 단편소설을 연구해 가며 읽었다. 언제 행을 바꾸고 어떤 자리에 구두점을 찍는지를 문학잡지에서 배웠다. 상세한 묘사를 중시하는 법은 일본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로부터 익혔다. 4년 동안 가와바타의 책을 탐독한 결과다. 가와바타 스타일에 매몰된 때 나타난 작가가 프란츠 카프가다. 위화는 카프카를 “글쓰기에 자유를 준” 작가로 설명했다. 소설가로서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위화는 이렇게 위대한 소설가들에게서 답을 찾아 나갔다.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위화 지음ㆍ김태성 옮김
푸른숲 발행ㆍ384쪽ㆍ1만4,500원
위화는 이 책을 통해 글을 향한 열정과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독자와 나눈다. 문학이 사회적, 역사적 맥락뿐 아니라 삼라만상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믿는 그의 가치관을 읽어나갈 수 있다. 위화가 자신의 소설만큼이나 말도 유머러스하게 한다는 점을 느낄 수 있게 번역됐다. “쓰다가 그만 둔 소설들이 USB 안에 혼수상태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거나 헤밍웨이의 말을 빌려 “‘허삼관 매혈기’는 단편소설로 시작했다가 브레이크를 밟지 못해 장편소설이 됐다”고 말하는 부분 등은 작은 웃음을 자아낸다. 수년 간 여러 장소에서 한 강연을 엮었기 때문에 내용이 더러 겹친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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