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공정성 의혹 해소 여부가 관건… “법원의 셀프 특별재판부” 비판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 관련자 중 가장 먼저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59)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건이 최근 신설된 형사합의부에 배당됐다.
재판부의 이력이나 성향상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과 관련 없어 비교적 중립적으로 판단할 것이란 평가가 나오지만, 국회 차원에서 특별재판부 설치 주장이 제기된 상황에서 법원이 사실상 ‘셀프 특별재판부’를 만들어 사건을 넘겼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은 15일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임 전 차장 사건을 적시 처리가 필요한 중요사건(적시처리 사건)으로 지정하고, 형사합의부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형사합의36부(부장 윤종섭)에 배당했다. 법원은 사법농단 관계자들과 재판부의 연고관계, 업무량(사건처리 건수) 등을 고려해 일부 재판부를 배제한 뒤, 나머지를 재판부 사이에서 무작위 전산배당을 거쳐 윤 부장판사 재판부에 사건을 넘겼다.
사법부 사상 초유의 사법농단 의혹 사건을 담당할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는 이달 12일 형사34ㆍ35부와 함께 만들어진 신설 재판부다. 정치권 안팎의 특별재판부 압력이 거센데다 기존의 13개 형사합의부 재판장 중 사법농단 핵심피의자들과 함께 일한 이들이 많아 무작위 배당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법원이 마련한 고육지책이다. 사법부는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여야 4당이 추진하는 특별재판부에 대해 위헌 소지를 들어 반대해왔다.
경남 거제시 출신으로 진주고와 경희대를 졸업한 윤 부장판사는 사법연수원 26기로 법조계에 입문한 중견 법관이다. 그는 지난달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며, 경찰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사망한 백남기 농민과 당시 살수차 지휘ㆍ조정 경찰관의 손해배상 조정(배상금 6,000만원)을 이끌어 낸 적이 있다. 지난해 같은 법원 민사단독판사 시절엔 “구청 환경미화원들의 통근수당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며 통상임금 범위를 넓게 본 판결을 하기도 했다. 사법농단을 주도했던 조직인 법원행정처에 근무한 경력은 없다. 또 임 전 차장 등 사법농단 연루 전ㆍ현직 법관들과 개인적 인연이나 친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부장판사는 판사 불법사찰과 성향 파악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피해자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도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배석인 임상은 판사는 이 연구회 회원으로 알려져 피고인 측이 문제로 삼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법원 관계자는 “해당 연구회 회원이 500명이나 돼 다 제외하기가 어려웠다”며 “재판장은 엄격히 적용하되 배석판사는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설명했다.
특별재판부 도입 논란의 핵심이 사법농단 의혹 사건 재판의 공정성 우려에 있었던 만큼 재판부로선 심적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전직 사법부 수뇌부가 연루된 사건이라 재판부가 재판절차나 판단에서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얼마나 해소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다른 어떤 사건보다도 엄격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전 차장 재판은 관련 자료가 방대해 공판 기일을 잡는 데만 약 2주 이상이 소요될 전망이다.
대법원 적시처리 사건 예규에 따르면, 법원은 △처리 지연시 막대한 규모의 손실 또는 소모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사건 △사안의 내용이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 등을 적시처리 사건으로 지정할 수 있다. 앞서 세월호 사건,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이명박 전 대통령 뇌물 사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사건 등이 적시처리 사건으로 지정됐다. 적시처리 사건은 통상 신속한 재판을 위해 재판 기일을 주 2회 이상으로 자주 연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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