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유산 남기기에 올인
싱가포르서 푸틴과 정상회담
“70년 과제 종지부 찍겠다
평화 조약 체결 가속화에 합의”

일본 역대 최장수 총리를 노리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정치적 유산’을 남기기 위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러시아와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북방영토(쿠릴 4개 섬)와 관련해 일괄 반환 입장에서 보다 현실적인 2개 섬 우선 반환 전략으로 선회하면서다.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 개정과 대중관계 개선, 북방영토 반환, 납치문제 해결을 통한 북일 국교정상화를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는 업적으로 꼽고 이른바 ‘전후 외교 총결산’을 추진하고 있다.
아베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4일 싱가포르에서 러일 정상회담을 열고 “1956년 소일 공동선언에 기초해 평화조약 체결을 가속화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아베 총리는 내년 1월 러시아 방문 일정을 검토하는 등 푸틴 대통령과 영토 반환과 평화조약 체결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상회담에서 언급된 소련(현 러시아)과 일본 국교 체결 당시 공동선언은 양국이 평화조약을 체결한 이후 쿠릴 4개 섬 중 시코탄(色丹)섬과 하보마이(歯舞)섬을 일본에 인도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 승리 후 홋카이도(北海道)와 가까운 시코탄섬과 하보마이섬, 구나시리(国後)섬, 에토로후(択捉)섬의 영유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승전국 소련이 이들 4개 섬을 자국 영토로 선언하고 실효적 지배를 해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회담 이후 취재진과 만나 “전후 70년 넘게 이어진 이 과제를 다음 세대로 미루지 않고 나와 푸틴 대통령 손으로 반드시 종지부를 찍는다는 강한 의지를 공유했다”며 “(푸틴 대통령과) 구축된 신뢰를 바탕으로 영토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언론들은 15일 회담 결과를 아베 총리 임기(2021년 9월) 내에 평화조약 체결 작업을 마무리하겠다는 뜻이라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조건 없이 연내 러일 평화조약을 맺자”고 즉석 제안해 아베 총리를 당황케 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영토문제 해결 없이 평화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며 4개 섬 일괄 반환을 강조해 왔다. 그러다 이번에 2개 섬 반환부터 협상하는 것으로 방침을 전환한 것이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 전에 외교 성과를 내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일본 입장에서는 협상 전망이 녹록치 않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일본이 2개 섬을 시작으로 최종적으로 4개 섬을 반환하는 방안을 제시한다고 해도 러시아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에선 ‘영토 양보’라는 비판과 일본에 인도할 경우 주일미군 배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일 공동선언에는 2개 섬의 인도만 명기돼 있다. 최근 경제불황과 연금개혁 등으로 푸틴 대통령의 국내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도 걸림돌로 거론된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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