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글로벌 Biz 리더] “4차 산업혁명 적응” 제조업에 디지털 DNA 심다

입력
2018.11.17 10:00
10면
0 0
조 케저 CEO가 최근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란 핵협정을 폐기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결정으로 이란 내 사업이 어려워졌다고 말하고 있다. CNN방송 캡쳐/그림 2지멘스 로고.
조 케저 CEO가 최근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란 핵협정을 폐기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결정으로 이란 내 사업이 어려워졌다고 말하고 있다. CNN방송 캡쳐/그림 2지멘스 로고.

지멘스는 전 세계 200여개국에 약 37만명 직원을 두고 지난해 830억유로(약 106조원) 매출을 기록한 세계적 기업이다. 170년간 이어진 기술개발 역사를 바탕으로 지멘스는 에너지, 의료,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전 세계인들이 어떤 식으로든 지멘스 기업이 창출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지멘스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한국전쟁 이후 재건 프로젝트에 참여해 국내에 발전 설비, 화학 공장, 시멘트 공장, 케이블 설치 등의 기반 시설 건설을 주도했다.

제조업에 기반을 둔 지멘스는 현재 빠르게 스마트 공장 등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화는 공장 생산라인에서부터 발전소, 컴퓨터단층촬영(CT), 빌딩 관리, 의료기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어, 지멘스도 이에 발맞춰 빠르게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 커지고 있다. 지멘스의 변화를 진두지휘는 이는 2013년 취임한 조 케저 최고경영자(CEO)다. 평사원부터 CEO까지 지멘스에서 48년을 근속한 그는 뼛속까지 지멘스 사람인 ‘지멘시어너(Siemensianer)’로 불린다. 케저는 “지멘스는 전 세계 200여개국에 진출해 사업을 하고 있고 100년 넘게 다양한 국가의 상황을 지켜봤다”며 “경제적으로 발전한 국가들의 공통점은 바로 변화에 적응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케저, 지멘스의 ‘재무통’ 

케저의 CEO 취임은 처음엔 지멘스가 구시대로 복귀하는 인사로 여겨졌다. 전임 CEO 페테르 뤠셔는 160년 이어진 지멘스의 내부승진 전통을 깨고 처음으로 외부에서 영입된 인물이다. 지멘스는 2007년 드러난 경영진의 분식회계, 공금횡령, 탈세 등 부패 스캔들 여파로 실적이 곤두박질치던 위기 상황이어서,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글로벌 제약회사 머크에서 일하던 뤠셔를 CEO로 임명해 지멘스에 새로운 피를 공급하려 했다. 뤠셔는 취임 이후 스마트공장 등 디지털 혁신을 위한 소프트웨어 분야에 10조원을 쏟아부으며 지멘스의 활로를 모색하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뤠셔 취임 다음해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강타, 그는 취임 6년 동안 연간 실적 목표치를 단 한번도 달성하지 못한 무능한 CEO가 되고 말았다. 지멘스 이사회는 뤠셔의 반발에도 그를 내쫓아내다시피 해임했다.

당시 지멘스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고 있던 케저는 이런 뒤숭숭한 상황에서 CEO에 올랐다. 그는 1980년에 지멘스 입사한 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 회사에서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인물이다. 케저는 독일 레겐스부르크공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23세이던 1980년에 지멘스에 입사했다. 그는 불과 10년 뒤에 지멘스 자회사인 옵토반도체의 경영관리부문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4년 뒤엔 지멘스의 미국 자회사 CEO에 임명됐다. 42세엔 지멘스의 뉴욕증시 상장 등을 추진하는 재무 부문 중책을 맡았고 불과 44세에 그룹 경영위원회에 합류했다. 2006년 그룹 CFO에 임명된 뒤 CEO가 되기 전까지는 그룹 재무를 책임졌다.

케저는 CEO 취임 이후 그룹에서 오랜 기간 재무를 담당했던 인물답게 기업의 역량을 효율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데 주력했다. 에너지와 스마트공장 등 핵심역량을 키우면서도 전망이 불투명하거나 적자사업은 과감히 분사 또는 처분했다.

케저는 최근 인터뷰에서 “지멘스는 공장 디지털화가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며 “제조업의 디지털화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요인이며 우리의 미래를 완전히 뒤바꿔놓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케저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 스마트공장 관련 기술 개발에만 연간 4조~6조원의 돈을 투자하고 있다. 케저는 4차 산업혁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향후 투자 규모를 더욱 늘릴 계획이다. 그는 헬스케어 사업과 같이 수익이 나는 사업의 지분까지 과감히 정리해 투자금을 마련하는 등 공격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다.


 

 ◇리더십 위기에 처한 케저 

평사원에서 그룹 CEO까지 지멘스에서 한평생을 보낸 인물답게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경영 리더십은 구성원들의 ‘주인의식’을 고취하는 일이다. 케저는 “펀드매니저는 주식을 갖고 있지만 회사의 20년 후 장기적인 전망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며 “주인의식을 가진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이들이 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케저가 기업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 여기는 게 직원들에 대한 설문 조사다. 그는 설문 조사에서 직원들 90% 이상이 “추가적인 교육을 받아서 회사에서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하고 싶다”고 응답할 때 가장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케저는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에선 고정 근무제가 구시대의 유물이 될 것”이라면서도 “국경 없는 인터넷 환경에서 기업이 새로운 역량을 갖추려면 직원들의 주인의식이 무엇보다도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케저는 직원들의 주인의식 고취를 위해, 직원에게 유리한 조건의 우리사주 제도를 운영하며 직원들이 직접 경영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케저는 지난 2016년 한 포럼에 참석해 “직원 35만명 중 15만4,000명이 우리사주를 보유하고 있다”며 “2020년까지 20만명 이상이 우리사주를 소유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케저의 이런 경영 리더십도 지멘스가 큰 위기에 빠지면서 흔들리고 있다. 지난 2015년 전 세계적으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바람이 불자 지멘스 내부에선 수익성이 더욱 악화하기 전에 대형 화력발전용 가스터빈 생산을 서둘러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가스터빈은 발전 부문에서 이룬 지멘스의 성과를 상징하는 제품이다. 지멘스는 지난 수십년간 5억 유로 이상을 투자해 ‘H 클래스’라는 새로운 형식의 가스터빈을 개발했다. 이 가스터빈은 복합 화력발전을 통해 60% 이상의 에너지 효율을 바탕으로 570메가와트(㎿)급의 전력을 생산한다. 2007년에 가장 혁신적인 고효율 가스터빈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고 2011년 독일 산업 혁신상을 받았다. 한국처럼 가스터빈의 연료가 되는 액화천연가스(LNG)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의 경우 LNG 운송비 부담이 크고 연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경우를 대비해 가능한 고효율 가스터빈을 구매하게 된다. 케저는 “대형 가스터빈은 앞으로도 쓸모 있을 것”이라며 다른 이들의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후인 지난해부터 대형 가스터빈의 전 세계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이 된 것이다. 가스터빈 생산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다면, 인력 재배치 등을 통해 정리해고 없이 대응할 수 있었지만, 갑작스레 위기가 불거지자 케저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았다. 지멘스는 지난해 11월 신재생 에너지 확대로 인한 수요 감소로 화력발전 사업부문에서 직원 7,000명을 줄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독일에 있는 6개 사업장 중 작센주 괴를리츠 공장을 포함 최대 3개는 폐쇄하기로 했다. 지멘스에서 주인의식을 강조하던 케저가 정리해고에 나서자 충격이 컸다. 뉴욕타임스(NYT)는 “지금까지 지멘스 직원들은 자신들을 지멘스라는 대가족의 일원으로 느꼈다”며 “하지만 케저의 화력발전 사업부문에 대한 감원 계획은 이 환상을 파괴했다”고 보도했다.

 ◇4차 산업혁명 대비하는 지멘스 

케저는 현재 제조기업인 지멘스를 정보통신(IT)ㆍ소프트웨어로 무장한 디지털 기업으로 전환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케저는 지난해 12월 독일 뮌헨 본사에서 열린 ‘이노베이션 데이’ 기조연설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 제조 기업의 생존은 산업 디지털화에 달려 있다”며 “지멘스도 전통적인 방식에서 탈피해 제조업에 ‘디지털 DNA’를 심기 위해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멘스는 2000년대 후반부터 적극적인 인수ㆍ합병(M&A) 전략으로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해 왔다. 2007년 소프트웨어 기업 UGS 인수를 시작으로 LMS인터내셔널 등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만 17개 기업을 인수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소프트웨어ㆍ디지털 서비스 분야에서만 52억 유로 매출을 달성했다.

케저는 여전히 지멘스 총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철도ㆍ가스 등 제조업의 비중을 줄이고, 디지털 공장ㆍ에너지ㆍ헬스케어 분야 등으로 수익을 다변화한다는 계획이다. 지멘스 디지털화의 핵심은 스마트공장이다. 스마트공장은 기획ㆍ설계ㆍ생산ㆍ유통ㆍ판매 등 모든 과정을 사물인터넷(IoT)ㆍ인공지능(AI)ㆍ빅데이터 등 IT로 통합해 시스템을 최적화한 공장을 말한다. 지멘스는 또한 전 세계 17개국에 IoT 운영 시스템인 ‘마인드스피어 앱 센터’ 20개를 설립할 계획이다.

케저는 올해 관련 연구개발(R&D) 예산으로만 56억 유로를 배정했다. 이 중 5억 유로는 제조, 자율로봇, 데이터 분석, 블록체인, AI 등 미래 기술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케저는 “디지털화는 거의 모든 산업 영역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 될 것”이라며 “지멘스의 전략은 디지털화, 전력화, 자동화에 대한 집중”이라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