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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경까지 왔지만... 장벽에 막힌 카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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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경까지 왔지만... 장벽에 막힌 카라반

입력
2018.11.14 18:20
수정
2018.11.14 23:3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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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대 350여명, 긴 여정 끝에 멕시코 접경도시 입성

13일 미국과 국경을 접한 멕시코 티후아나에 마침내 도착한 중미 출신 이민자 행렬, 이른바 ‘카라반’의 선발대(350명) 가운데 일부가 국경 장벽 너머의 미 국경수비대원들을 바라보고 있다. 티후아나=로이터 연합뉴스
13일 미국과 국경을 접한 멕시코 티후아나에 마침내 도착한 중미 출신 이민자 행렬, 이른바 ‘카라반’의 선발대(350명) 가운데 일부가 국경 장벽 너머의 미 국경수비대원들을 바라보고 있다. 티후아나=로이터 연합뉴스

“신이시여, 제발 버스가 오게 해주세요.”

지난 9일 중미 출신 이민자 행렬(카라반) 본진에 속했던 델리아 무리요는 멕시코 당국이 마련한 임시 쉼터 멕시코시티 헤수스 마르티네스 경기장에서 미 CBS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시 카라반 본진은 멕시코시티에서 가장 가까운 텍사스주 국경 대신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와 맞닿은 멕시코 서부 티후아나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이 길이 인신매매 조직이나 마약 갱단으로부터 훨씬 안전하다는 이유에서다. 멕시코시티에서 티후아나까지는 약 2,800㎞로, 쉬지 않고 580시간 이상을 걸어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무리요의 간절한 기도는 통했을까. 그의 성공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동료 일부에게는 기도가 통했다. 13일(현지시간) 카라반 무리 일부가 미국 남부 국경에 도착했다. USA투데이 등은 “선발대 350여명이 9대 버스에 나눠 타고 멕시코 티후아나에 입성했다”며 “이들은 휴식 후 망명 신청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달 13일 1차 무리가 온두라스를 떠나 미국행을 시작한 지 꼬박 한 달만이다. 이들은 숨막히는 더위와 폭우를 이겨내고 3,600㎞를 달려왔다. 온두라스 출신인 호세 메히아는 DPA통신에 “이제 한 걸음만 더 전진하면 미국이다. 여기까지 오게 해준 신께 감사 드린다. 기쁘고, 또 고맙다”고 말했다.

아직 다른 카라반은 멕시코시티, 중서부 과달라하라 등지에 있다. 버스를 타지 못해 버스를 계속해서 기다리거나, 버스를 포기하고 걸어서 티후아나로 향하고 있다. AP통신은 “수천 명이 13일 오전 과달라하라에 있는 쉼터를 떠나 고속도로에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추가로 버스가 오지 않아 발이 묶였다. 일부는 걷고 있다”고 전했다. 7세 딸을 데리고 버스 타기에 실패한 마리아 안토니아 마르티네스는 “텅빈 고속도로를 5시간째 걷고 있다”며 뙤약볕 아래 행진을 이어갔다.

이들에게 버스를 타고 국경 지대에 먼저 도착한 선발대는 선망의 대상이겠지만, 티후아나에 도달한 카라반들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종 목적인 미 입국의 길은 멀고도 험하기 때문이다. USA투데이는 “하루에 신청 가능한 망명인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신청을 한다고 해도 받아 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선발대로 티후아나에 온 구스타보는 가디언에 “과테말라에서 왔고, 가난해서 망명 신청이 안 받아들여 질 수 있겠단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나는 좀 더 나은 삶은 원해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일단 미국 땅을 밟고 보자는 심산으로 국경을 넘을 수도 있겠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미 국경세관단속국(CBP)은 13일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로 통하는 샌 이시드로와 오테이 메사의 가장 붐비는 4개 차선을 일시적으로 폐쇄한다고 밝혔다. 카라반이 속속 국경 지대에 도착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안보 위험에 대비한다는 이유에서다. 미군은 철조망과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상황에도 카라반들은 필사적으로 미국행을 감행하고 있다. 미국에서 불법 이민자로 구금될지 언정 가난과 폭력이 만연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살짜리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밀고 과달라하라에서 멕시코 테픽으로 향하고 있는 마리벨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자들을 향해) 하는 말을 모두 알고 있다. 국경을 폐쇄하든 말든 우리는 결국 국경을 통과할 것”이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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