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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오! 베트남] 한국어 넉 달 배우고 “다녀오겠습니다”도 모르는 엉터리 교육

입력
2018.11.15 04:40
수정
2018.11.16 11:0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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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베트남에서의 한국어 교육

결혼 이민자 올해 5000명 돌파

비자 받기에 급급... 의사소통 안 돼

비영리 교육기관들 정체성도 문제

공관장 출신도 “해결 범위 밖” 난색

한국으로 결혼 이민 예정인 베트남 여성들이 남부 껀터시에 자리잡은 한-베 함께돌봄센터에서 사전교육을 받고 있다. 껀터 유엔인권정책센터(KOCUN) 제공
한국으로 결혼 이민 예정인 베트남 여성들이 남부 껀터시에 자리잡은 한-베 함께돌봄센터에서 사전교육을 받고 있다. 껀터 유엔인권정책센터(KOCUN) 제공

올해 스물 넷의 꾸엔(가명)씨는 한국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베트남 새댁’이다. 지난봄 한국 남편과 결혼했고, 한국어 시험은 단번에 통과해 지난달 경북 구미 시댁에서 신접살이를 시작했다. 최근엔 시댁 친지들 앞에서 결혼식도 치렀다. 내년 여름 출산을 앞두고 있는 그의 소박한 꿈은 한국에서 친정 식구들과 재회하는 것. 남편 홍모(45)씨는 “출산하면 베트남의 장인ㆍ장모를 한국으로 초청할 수 있고 처남도 인근 공단 지인이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일하도록 초청할 계획”이라며 “아내 소원은 머지않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꾸엔씨의 결혼 하나로 온 가족이 한국에서의 삶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고향은 메콩델타 하우장성으로, 호찌민시에서 버스로 5시간을 달린 뒤 배로 강을 건너고 다시 오토바이로 농로를 30, 40분 달려야 닿는 오지 마을이다.

◇결혼이민자 규모 ‘원상회복’

14일 호찌민총영사관에 따르면 꾸엔씨처럼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으로 결혼 이민하는 베트남 국적자가 올해 들어 지난달 말 기준 5,000명을 넘었다. 이 추세라면 연말에는 결혼비자 심사강화 이전인 2013년(5,708명)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한국 배우자의 소득조건 강화와 결혼이민자의 한국어기초능력 확인 등 비자발급 심사기준 강화 조치로 3,800명 수준으로 떨어졌던 수치가 다시 회복된 것이다.

총영사관 관계자는 “양국 교류협력이 활발해지고 있는 만큼 이 숫자는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한 전체 외국인 아내 중 베트남 국적자는 36.1%에 이른다.

베트남 국적자가 한국 결혼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ㆍ토픽) 1급을 따거나 한국 법무부가 지정한 기관에서의 교육 이수가 필수다. 현재 아시아문화교류재단(ACEFㆍ아세프), 한국이민재단, 한글세계화운동본부 등이 법무부 인증을 받아 교육하고 있다. 토픽 시험을 주관하는 김태형 한국교육원장은 “응시생 중 결혼비자를 받기 위한 사람 수는 손에 꼽는다”고 말했다. 결혼이민비자 발급 목적의 한국어 교육은 대부분 법무부가 지정한 이들 교육 기관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요식행위 전락한 한국어시험

꾸엔씨가 남편을 처음 만난 뒤 한국에 자리를 잡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7개월. 그 중 4개월은 호찌민시에서 한국어 공부에 매달린 시간이다. 한국 법무부가 지정한 결혼이민자 한국어교육 기관에서 수업을 듣고, 브로커 ‘마담’이 마련해 준 집에서 같은 처지의 또래 셋과 합숙했다. 남편 홍씨는 “그래도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런 사람들의 예비 신랑에겐 브로커가 200달러에 합격증을 제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비교적 순탄하게 한국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꾸엔씨이지만, 가족들의 한국 초청 바람은 멀어지고 있다. 결혼식 후 본격화한 고부 갈등 때문이다. 남편 홍씨는 “한국어 공부에 4개월이 짧은 시간이긴 하다”면서도 “그간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말이 왜 이것밖에 안 되느냐며 아내의 한국어 실력에 어머니 불만이 보통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실제 현지에서는 한국어 교육이 가족 간 의사소통 능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기보다는 결혼비자를 발급받기 위한 요식행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베트남 현지에서 결혼이주여성과 자녀들을 지원하고 있는 유엔인권정책센터(KOCUNㆍ코쿤) 껀터사무소의 이유미 총괄매니저는 “한국어 시험에 합격해서 비자를 받은 여성들과 대화하다 보면 한국어 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며 “한국어 교육을 명분으로 결혼중개업자들이 한국 남성에게 경제적 부담을 더 지우게 된 꼴이고, 이 때문에 ‘매매혼’의 성격이 더 짙어졌다”고 지적했다.

남편 홍씨는 최초 맞선 당시의 왕복 항공료와 소개비, 각종 서류 준비, 한국어교육 등 ‘결혼 관련 일체’ 비용으로 1,700만원을 중개업자에게 지불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내 입국 전 생활비 지원, 현지 친척 방문 등에 1,500만원가량을 더 썼다. 홍씨는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라는 말도 구미에 와서야 배웠다”며 “교육기관에서 4개월 동안 도대체 무엇을 가르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합격 커트라인(60점)을 훨씬 넘은 80점을 받은 꾸엔씨의 한국어 소통능력이 이 정도니, 한국어 교육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끌려다니는 공관ㆍ법무부

인증 기관에서의 한국어 교육이 엉망이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호찌민총영사관이 직접 출제하고 난도를 높였으나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총영사관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문제 비중이 높아지고 합격률이 곤두박질치자 기관, 중개업자, 남편들로부터 민원이 빗발쳐 업무가 마비됐다”고 말했다. 이전 합격률은 브로커와 교육기관 간 거래유착관계 등의 영향으로 90~95%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어를 교육하는 기관들의 정체성도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겉으로는 비영리 기관이라고 주장하지만, 관계 당국의 감시가 이뤄지지 않은 채 다른 경로로 이득을 챙기고 있다는 정황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총영사관 관계자는 “비영리 조건은 수강료를 받되 교사 월급, 공간 임대료 등 실비 수준의 돈만 받으라는 이야기”라며 “발생한 수익은 사회 환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비영리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영사관 관계자가 아세프 사무실을 찾았으나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관련 법은 공관의 현장점검에 교육기관은 적극 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지 공관에 따르면 베트남 남부 결혼이민 희망자의 70%가량이 아세프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웬만한 근로자 한달 월급인 1인당 600만동(30만원)가량을 낸다. 교육비 수준이 타당한지를 묻는 확인 요청에 대해 김기영 아세프 원장은 “다른 데는 우리보다 20% 더 비싸게 받고 있다”고만 밝혔다. 치외법권 지역인 총영사관별관 건물을 작년까지 관리하던 아세프는 최근까지 공관 건물에서 유료로 교육, 한베 외교갈등을 촉발시킨 단체이기도 하다.

지난 1월 호찌민총영사 자리에서 물러난 박노완 전북도 국제관계대사는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공관장이 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일이었다”고 말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베트남 결혼 이민 비자 발급 추이. 강준구 기자
베트남 결혼 이민 비자 발급 추이. 강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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