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인을 저지른 남편에게 그 시신을 묻을 수 있게 삽을 건넨 혐의로 구속 기소된 아내가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 받았다. 비록 남편의 말을 듣고 한 행위라곤 하지만, 분명한 사체 은닉 방조 행위로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전고법 제1형사부(권혁중 부장판사)는 사체은닉 방조, 살인 방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항소심에서 A씨와 검찰의 항소를 모두 기각해고 원심을 인용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1심에서 살인 방조 혐의는 무죄를, 사체은닉 방조 혐의는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자, “원심의 양형이 지나치고 무거워 부당하다”고 항소했다. 검찰도 A씨의 살인 방조 혐의를 무죄로 본 것은 부당하다는 등의 이유로 항소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으로 고통을 겪던 A씨의 남편은 지난해 7월 함께 술을 마신 B씨가 약을 섞어준 게 원인이라고 B씨를 원망했고, 적개심까지 갖게 됐다. A씨의 남편은 급기야 무려 6개월 정도나 통증이 계속되자 지난 1월 20일 A씨에게 운전을 시켜 귀가하는 B씨의 차량을 추월해 가로막은 뒤 “왜 내게 약을 먹였냐. 해독제를 달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화를 참지 못하고 B씨에게 둔기를 휘둘러 잔인하게 살해했다.
A씨 남편은 이후 숨진 B씨 시신을 인적이 드문 간척지로 옮겼고, “승합차에서 삽을 가져오라”고 해 A씨로부터 건네 받은 삽으로 구덩이를 판 뒤 시신을 묻었다.
A씨 남편은 범행이 들통날 것을 의식해 B씨의 혈흔 등이 남은 승용차를 불태우기까지 했다.
1심 재판부는 결국 살인, 사체 은닉, 일반자동차방화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A씨 남편에게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의 남편이 피해자를 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살인 방조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사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유가족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는 데다 엄벌을 탄원하고 있어 원심의 양형을 존중하는 게 타당하다”고 원심 유지의 이유를 밝혔다.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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