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명여고 시험문제ㆍ정답 유출 사건 이후 고교 내신을 비롯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전반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내신비리를 전수조사하라”는 요구도 나온다. 그러나 부정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시도교육청 감사는 인력부족 및 조사권한의 한계로 실효성이 크지 않은 상황. 그러다 보니 최근 일선 교육청이 사립유치원에 대해선 별도 감사팀을 꾸려 고삐를 죄는 것과 달리, 초중고교의 감사는 학교 자율에 맡기는 추세라 오히려 학생ㆍ학부모의 바람에 역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교육청은 최근 ‘학교자율감사제도’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했다고 14일 밝혔다. 학교자율감사란 교원이 감사반을 꾸려 직접 학생평가ㆍ복무ㆍ회계 등 업무 전반을 감사하는 제도다. 감사반이 교육청으로부터 받은 감사항목에 맞춰 하나하나 점검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면 교육청과 외부 전문가 등이 결과를 검토하는 식이다. 현재 경남ㆍ경북 및 대구교육청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서울시교육청도 지난달부터 27개 공립 초중고교에서 시범운영을 시작하는 등 제도 도입을 고려하는 교육청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학교자율감사가 각광받는 이유는 인력 부족으로 인한 감사적체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2010년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각 교육지원청에 있던 유ㆍ초ㆍ중학교 감사권이 시도교육청으로 통합됐고, 교육청 1곳이 감사해야 할 기관이 5~6배 많아졌다. 이에 따라 서울의 경우 통상 한 학교가 10년에 한 번, 경남은 14년에 한번 꼴로 감사를 받는다. 반면 자율감사를 도입하면 필요 시 학교가 매년 감사를 할 수도 있어 문제를 더 빨리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 교육청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현행 자율감사 제도상 내부 감사직을 주로 교감ㆍ교무부장 등 보직교사가 맡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숙명여고 사건 같은 내신 부정을 밝혀낼 수 있겠냐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서울 A고 교사는 “몇 년 전 한 보직교사가 자기 자녀를 일방적으로 명문대 수시전형에 추천했다가 떨어진 일이 있었는데 당시 교육청이 실시한 종합감사에선 드러나지 않은 채 넘어갔다”며 “학교가 마음만 먹으면 전문 감사도 속일 수 있는데 자율감사는 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자율감사를 시행한 학교에서도 면피성 제도로 전락하기 쉽다고 우려한다. 창원 B고 교사는 “교육청에서 나온 체크리스트를 교사들이 스스로 작성하는 식인데, 동료교사끼리 서로의 업무를 깐깐하게 감사하는 건 껄끄럽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감사가 제대로 됐어도 처분이 이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실제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자율감사결과에 따라 시교육청이 교사 13명에게 주의 처분을 내렸지만 근무성적평정 및 성과상여금에 이를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고사관리를 사실상 각 학교에 떠맡긴 상태라 이를 외부에서 관리하고 처벌할 시스템이 더 시급하다고 말한다. 조창환 좋은교사운동 교육정책연구소장은 “영국의 자격시험감독청처럼 내신평가 공정성 확보 가이드라인부터 출제ㆍ채점자 훈련에 이르기까지 확실한 외부검증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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