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전임감독 전격 퇴진
야구 국가대표팀 선동열(55) 전임감독이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놨다.
선동열 감독은 14일 서울 도곡동 한국야구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7월 24일 한국 야구 첫 전임감독으로 취임해 2020 도쿄올림픽까지 대표팀을 지휘하기로 했지만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특정 선수 선발로 불거진 후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 사퇴했다.
선 감독은 “감독직 사퇴를 통해 야구인의 명예와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명예를 지키고 싶었다”며 별도의 질의응답 없이 회견장을 떠났다. 현역 시절 해태에서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의 눈부신 성적을 낸 ‘국보 투수’의 씁쓸한 퇴장이었다.
선 감독은 입장문을 통해 아시안게임 3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고도 선수들의 자존심을 지키지 못한 점과 유례 없는 국가대표 감독의 국정 감사 증인 출석,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우승이 그렇게 어려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발언,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의 ‘전임감독제가 필요 없다’는 발언 등을 주요 사퇴 이유로 꼽았다. 선 감독은 거듭 특정 선수 선발과 관련해 “우리 시대 청년들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다. 병역 특례에 대한 시대적 비판에 둔감했다”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스포츠 행정가가 아닌 국가대표 감독이 국감 증인으로 처음 채택된 것에 큰 치욕을 느낀 선 감독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국감장에서 나온 수준 이하의 질의와 사퇴 종용에도 침착하게 대응했던 선 감독은 감독직을 계속 잡을 것으로 보였지만 이후 국감장에 선 정운찬 총재의 잇단 실언에 마음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정 총재는 사견을 전제로 “전임감독제에 찬성하지 않는다”, “아마추어 선수들도 몇 명 포함시켜야 한다”, “TV로 선수들을 본다는 건 선 감독의 불찰이다” 등으로 선 감독을 노골적으로 공격했다. 또 ‘스타 선수는 지도자로 성공할 수 없다’는 손혜원 의원의 말에 동의하기도 했다.
선 감독은 “전임 감독제에 대한 총재의 생각, 비로소 알게 됐다”며 “자진 사퇴가 총재의 소신에도 부합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정치권 일각의 ‘스타 선수가 명장이 되란 법 없다’라는 지적, 늘 명심하도록 하겠다”는 가시 돋친 말을 남겼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 감독의 자진 사퇴에 KBO는 당혹스러워했다. 특히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르는 정 총재의 발언이 선 감독에게 비수를 꽂는 셈이 돼 난감하기만 하다. 장윤호 KBO 사무총장은 “총재와 KBO 전 직원도 예상 못한 일”이라며 “총재가 ‘한국 야구를 위해서 도쿄올림픽까지는 대표팀을 맡아달라’고 선 감독을 만류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것도 막고, 복도까지 나와 선 감독을 만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선 감독의 마음은 멀리 떠났다. 정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선동열 감독 입장문 전문>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 여러분, 야구인 여러분. 국가대표 감독 선동열입니다. 저는 오늘 국가대표 야구 감독직에서 스스로 물러납니다. 지난 9월 3일, 저와 국가대표 야구팀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였습니다. 아시안게임 3회 연속 금메달이었음에도 변변한 환영식조차 없었습니다. 금메달 세레모니 조차할 수 없었습니다. 금메달을 목에 걸 수도 없었습니다.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금메달의 명예와 분투한 선수들의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한 데에 대해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결심했습니다. 감독으로서 선수들을 보호하고 금메달의 명예를 되찾는 적절한 시점에 사퇴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지난 10월, 2018 국회 국정감사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어느 국회의원이 말했습니다. “그 우승이(아시안게임 금메달이) 그렇게 어려웠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 또한 저의 사퇴결심을 확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국가대표 감독직을 떠나며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감독의 책임은 무한책임입니다. 저는 그 책임을 회피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선수선발과 경기운영에 대한 감독의 권한은 독립적이되, 존중되어야 합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귀국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간 여러 일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청렴운동본부가 국민권익위원회에 저의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신고를 했습니다. 억측에 기반한 모함이었습니다. 마음 아팠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종결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구체적 문제 제기가 무엇이었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 종결처분되었는지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에 정보공개를 요청했습니다만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을 뿐입니다.)
잠시 언급했듯이 국가대표 감독의 국정감사 증인 출석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으며, 대한체육회 역사상, 국가대표 감독 역사상, 한국야구 역사상 처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스포츠가 정치적 소비의 대상이 되는, 그리하여 무분별하게 증인으로 소환되는 사례는 제가 마지막이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되어야 마땅합니다. 불행하게도 KBO 총재께서도 국정감사에 출석해야만 했습니다. 전임감독제에 대한 총재의 생각,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자진사퇴가 총재의 소신에도 부합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정치권 일각의 ‘스타 선수가 명장이 되란 법 없다’라는 지적, 늘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독직 수행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는 인내심을 갖는 것. 둘째는 인내하는 것. 셋째로 가장 중요한 것이 인내심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사표를 제 가슴속에 담아두고 기다리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수차례 사퇴를 공표하고 싶었습니다만 야구인으로서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국가대표 야구선수단의 명예 회복, 국가대표 야구 감독으로서의 자존심 회복,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영예 회복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야구인의 대축제인 포스트시즌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사퇴하는 것이 야구에 대한 저의 절대적 존경심을 표현함은 물론 새 국가대표 감독 선임을 통해 프리미어12나 도쿄올림픽 준비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구성 과정에서 있었던 논란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리고자 합니다. 기자회견과 국정감사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우리 시대 청년들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병역 특례에 대한 시대적 비판에 둔감했습니다. 금메달 획득이라는 목표에 매달려 시대의 정서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정중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공을 만지기 시작한 이래 저는 눈을 뜨자마자 야구를 생각했고, 밥 먹을 때도 야구를 생각했고, 잘 때도, 꿈속에서도 야구만을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야구를 생각하지 않은유일한 시간이 있다면 마운드에, 그리고 덕아웃에 서 있을 때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야구에 대한 저의 열정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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