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사람들이 말하는 ‘로스쿨의 그늘’]
“개정된 법조문도 보지 않고 수업하는 교수들도 있어”
“지방대 로스쿨 60%가 SKY 졸업자… 학부 이름값 이어져”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 10년. 로스쿨 초기부터 안고 있던 변호사 시험 합격률 하락과 그로 인한 고시 학원화 우려는 오래전 현실이 됐다. 서울 신림동과 신촌 학원가는 호황을 이루고 로스쿨생은 이론ㆍ실무수업보다 시험공부에 치중하고 있다. 법률서비스 비용을 대폭 낮출 것이란 기대와 달리 변호사 수 증가는 제한적이었고 법률적 도움의 사각지대인 무변촌(無辯村)은 여전히 많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조인을 양성해 여러 직역에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했으나 우수한 인재들은 대형로펌과 검찰, 재판연구원(로클럭)으로 쏠렸다. 눈에 띄는 독특한 이력이 아니면 명함도 내밀기 힘들다.
로스쿨 도입취지를 점검하고 입시제도와 교과과정, 변호사시험 개선 방안 등에 대한 여러 관계자의 생생한 의견을 듣기 위해 지난 5일 한국일보 사옥에서 집담회를 가졌다. 사법시험으로 변호사가 돼 로스쿨에서 변호사를 양성한 최승재 세종대 교수(전 경북대 로스쿨 교수ㆍ전 김앤장 변호사)와 정선균 법학박사(메가로이어스 교수ㆍ동국대 법학과 교수), 박강훈 전국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 회장(제주대 로스쿨), 지방대 로스쿨 출신 30대 후반 변호사 김로변(가명), 변호사시험에 5차례 응시했지만 고배를 마신 유튜버 오탈누나(가명)가 참여했다. 최승재 교수가 좌장으로 집담회를 이끌었다.
◇‘다양한 법조인 양성’ 취지는 실현됐나
최승재(좌장)=로스쿨은 연령과 전공, 경력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 도입했다. 그 취지가 잘 실현되고 있다고 동의하는가.
박강훈=다양한 연령과 전공, 경력을 지닌 사람이 들어온 건 부인할 수 없다. 다만 평균연령이 점차 낮아지는 건 모든 로스쿨의 공통점이다. 영남대 로스쿨을 제외하고는 평균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당초 취지가 조금씩 퇴색해간다.
김로변=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비(非)법학사가 다수 입학했다. 가장 큰 장벽은 연령이다. 내가 졸업한 지방대 로스쿨은 30대 이상이 많았다. 그러나 30대 이상이 없거나 1~2명만 뽑는 학교도 있다. 나이가 많은데 상위권 로스쿨에 입학했다면 의사, 회계사 등 전문 자격증이 있는 것이다. 일반 회사 경력을 쳐주진 않는다.
최승재=나이 많은 사람은 로스쿨 입학시험인 법학적성시험(LEETㆍ리트) 성적이 낮거나 변호사시험(변시)에 합격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많다.
김로변=근거 없다. 리트 상위권 득점자가 변시를 탈락하는 일이 매우 많고, 반대로 리트 성적이 낮아도 변시에 합격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이와 변호사시험 합격도 무관하다. 평균 30대 이상인 지방 로스쿨에서 졸업생 100%가 변시에 합격했고, 합격률은 70%를 넘는다. 나이 어린 학생 상당수가 휴학하는데, 이들이 변시에 응시 안 하니 합격률이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어린 학생들이 많은 서울권 로스쿨의 합격률이 높은 이유이다.
◇학벌 구조 고착화, 원인은?
최승재=일부 상위권 대학교 졸업자가 로스쿨에 진학하는 비율이 높고, 이런 현상이 학벌 구조의 고착화에 기여한다는 지적이 있다.
정선균=특정대학에서 로스쿨에 많이 진학하는 건 사실이지만, 과거 사법시험을 가장 많이 준비한 학교도 서울대였다. 비단 로스쿨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교육 제도의 문제다.
박강훈=(학벌 구조가) 많이 깨졌다고 본다. 이른바 스카이(SKY) 대학교뿐 아니라 다양한 학교 졸업자들이 로스쿨에 다닌다.
김로변=고착화가 심해졌다고 본다. 나는 서울대를 졸업했고, 내가 나온 지방대 로스쿨의 60%는 스카이 졸업자였다. 서울권 로스쿨도 사정은 비슷하다. 또 로스쿨에는 서열이 매겨진다. 로스쿨 자체 역량으로 평가되기보다 로스쿨 도입 초기부터 학부 이름값이 그대로 이어졌다. 그 구조를 깨뜨릴 여지가 없었다. 법조계 내에서 양질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대형로펌, 검찰 등에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카이 출신들이다.
최승재=통계적으로 분산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들어가 보면 선호도 높은 직장에선 서열화가 여전히 공고하다는 입장이다.
오탈누나=입학은 다양해도 막상 졸업하면 대형로펌은 지방대 로스쿨 출신을 안 받을 것이라 생각해 (지원 자체를) 포기한다. 의대는 학벌주의가 완화됐다고 한다. 전문영역이 세분화되어 순위가 낮은 대학 출신이라도 (학교 간판의) 영향을 안 받는다.
◇끊이지 않는 로스쿨 금수저 논란
최승재=로스쿨 입학자들을 둘러싼 금수저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로스쿨 전형에 ‘사회적 배려 전형’이 있지만 보여주기식이라는 사회적 비판이 있다.
박강훈=금수저 프레임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돈 없는 학생도 많다.
오탈누나=다른 공부도 다 돈이 많이 든다. ‘돈’경찰 ‘돈’공무원 이라고는 안 부르면서 왜 로스쿨만 ‘돈’스쿨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김로변=로스쿨 입시부터 ‘부모의 재력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반영된다. 자기소개서에 어린 시절 유학경험과 봉사활동을 나열하다 보면 부모 실명, 직업을 쓰지 않아도 결국 배경이 드러난다. 극심한 빈곤층이나 탈북자 정도는 돼야 사회적 배려 전형으로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하며 학비를 버는 친구들은 그런 경력을 만들 수 없다.
최승재=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사건들이 있었다. 대형로펌에서 누구 자제를 뽑았다가 시험에 떨어지는 바람에 채용이 취소 내지 유예되기도 했다. 취업과정에 부모 직업이 영향 미치는 것 같나.
김로변=금수저가 아니고 부모님 도움 못 받아서 스스로 취업했다. 하지만 영향을 미치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대형로펌에서 법조인ㆍ고위층 자제 뽑는 건, 그들의 인적네트워크가 필요해서다. 그 자제를 뽑음으로써 창출되는 이윤이 있다면, 공공기관도 아닌데 기업 입장에선 당연한 거다.
박강훈=로스쿨 입시 비리는 근본적으로 일부 교수가 문제다. 교수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닌다. 부모 강의를 수강하고, 아버지가 출제한 시험에서 A+를 받으니 비난 대상이 된다. 취업 후에도 부모 배경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대한민국 구조적 문제다. 입시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로스쿨 도입 후 변호사 수는 충분해졌나
김로변=로스쿨 도입 취지를 생각하면 변호사수가 결코 많지 않다. 사법시험 때 1,000명인데 올해 1,600명 정도 변시에 합격했다. 로스쿨 1~2기 때는 연수원 출신 합쳐 2,500명 나왔지만, 당시에만 그랬다. 기성 변호사들의 수임료가 극적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젊은’ 변호사들의 ‘월급’만 떨어졌다. 국민이 느끼기에 변호사 수는 여전히 부족하다.
정선균=변호사 수는 줄이되 합격률은 높여 입학 과정에서 검증한 뒤에는 변호사가 되기까지 과정을 안정화해야 한다.
박강훈=학생 입장에선 정원을 줄이고 합격률을 정상화 시키기를 바란다. 겪어보니 변호사 선임할 때 기본 300만원이 든다. 서민에게 저렴한 서비스가 아니다.
최승재=변호사 1명당 월 수임 건수가 2건 이하라는 통계가 있다. 어떤 변호사는 최저임금도 못 받을 가능성이 있다. 모든 변호사가 돈이 많아 공익활동하려고 로스쿨 간 건 아니다. 그런 지점에서 숫자 논의가 필요할 거 같다.
오탈누나=변호사들의 수입보다 중요한 건 국민의 변호사 선택권이다. 실력이 하향평준화 되더라도 변호사를 선임할 때 수요자인 국민의 선택지가 많아졌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로스쿨 3년 교과과정은 적정한가
김로변=사시 경험이 있어서 3년 과정에 무리는 없었다. 첫학기 성적에서 경험이 차이를 드러냈다. 어린 비법학 전공자는 굉장히 힘들어했다. 단기에 특출한 성적을 내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사법시험 통과자의 평균 법학 공부 기간은 3~4년, 여기에 사법연수원 2년이 더해졌다. 로스쿨은 3년 과정인데다 실제 공부기간은 3학기 정도뿐이다. 3년 내 최소한의 실력을 갖추기 어렵다. 로스쿨 1, 2기 합격률은 87.15%여서 변시 성적이 낮아도 합격했지만, 최근 변시 합격률은 40%대다. 실수하면 떨어진다.
최승재= 법학사와 출발점이 다를 수밖에 없는 비법학사들을 위해서도 다른 트랙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법대 나오면 패스트트랙(Fast Track)을 주는 예비시험에 동의하나.
김로변=패스트트랙에 동의한다. 로스쿨에서 변호사로서 필요한 건 다 배웠다고 생각한다. 학교 교육은 개선이 필요하지만 충분히 잘 되고 있다고 본다. 다만, 기존 사법시험 공부할 때보다 돈이 더 들면 들었지 적게 들진 않았다. 법공부 경험이 있음에도 추가로 3년의 시간과 비용을 소비했다. 법학사인 내가 비법학사들과 공정하지 않은 경쟁을 했다고 생각한다.
정선균=법학사는 패스트트랙을 통해 3년으로 끝나게 하고 비법학사들은 반드시 최소 따로 6개월 정도 공부를 시켜야 한다. 변호사 시험을 1월에 보고 5월에 발표가 난다. 학생들이 4개월간 쉰다. 결과적으로 탈락하면, 쉬는 동안 잊어버린 것을 복기하느라 공부를 더 해도 실력은 올라가지 않는다. 해를 거듭할수록 커트라인은 더 높아진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근본 원인은 로스쿨 다닐 때 공부를 충분히 못했기 때문이다.
박강훈=3년으로 충분하다. 실무가로서 필요한 최소한만 훈련시킨 뒤 졸업시키는 게 로스쿨 도입 취지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보면 암기할 내용 중에 변호사 업무에 필요할지 의문이 드는 게 굉장히 많다. 깊은 이론과 판례가 섞여 있고 문제풀이를 위해 암기 훈련을 하고 있다.
정선균=비법학 전공자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법학 용어의 기본은 한자인데 요즘 학생들은 한자를 배우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밑바탕이 없이 실무 교육을 하니 마치 산수를 모르고 수학을 하듯 어려울 수밖에 없다. 3년 과정 후 6개월~1년을 기초 법학을 가르치거나 사법연수원 제도를 빌려와 변시 합격 후 국비로 해서 실무교육 따로 받게 해야 한다.
◇로스쿨 학원화, 원인과 해법은
박강훈=학원이 25개(전국 로스쿨) 지점으로 돼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제대로 된 학원이면 수강을 열심히 하는데, 선생님 말씀 잘 안 듣고 ‘자기 주도형 25개 지점으로 나눈 변호사 시험 학원’이다. 심각한 상황이다.
김로변=로스쿨은 학원이 맞다. 학원화된 이유는 변호사시험 합격률 때문이다. 1, 2기 선배나 교수님 말씀 들어보면, 그야말로 미국 스타일로 강의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학원화돼선 안 된다. 학원에서 배운 건 ‘법학적 사고력’이라기 보다 어떻게 하면 답안이 돋보여 1~2점을 더 받을 것인가 하는 ‘답안지를 잘 쓰는 스킬’이다.
최승재=실무가 양성을 위한 학원화는 숙명적인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학원을 만들어야 한다.
박강훈=일부 로스쿨 교수들이 개정된 법조문도 보지 않아서, 옛날 죄명 그대로 말씀한다. 전국 어디에나 존재하는 교수들의 문제다.
오탈누나=소속 학교에 상관없이 양질의 강의를 공유해 두루 들을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공부를 못할수록 좋은 선생님이 필요하다. 어느 학교에 어느 교수 강의가 좋다고 소문이 나도, 인맥 없이는 구할 수가 없다. 내가 들어간 학교에 맞는 강의가 없으면 학원에 가야 한다.
최승재=로스쿨 교수는 학교가 학문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외부에서는 바로 투입할 병사(실무 가능한 법조인)가 필요하다. 생각의 차이가 있는 듯하다. 로스쿨은 학문하는 곳인가 실무를 공부하는 곳인가.
박강훈=25개 학교 대표들 공통된 목소리는 실무교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무교수 비율을 높여야 제대로 된 로스쿨 아니겠나. 법대에서 4년 배운 학문을 로스쿨에서도 그대로 가르친다. 이걸 기대하고 로스쿨 온 게 아니다.
최승재=학생 입장에서 로스쿨은 법대와 달라야 한다. 법 실무는 자전거 타기와 비슷해서 실무 없이 배우는 건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리걸클리닉(Legal Clinic)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5개 로스쿨로 나눠지면서 사법연수원에서 이루어지던 전통이 끊겨 아쉽다.
김로변=법학은 학문과 실무가 분리될 수 없다. 법철학, 법제사 등은 순수 법학으로서 실무가 필요없을 수 있다. 하지만 주요 법학과목은 학문과 실무 경험을 모두 갖춘 교수가 가르쳐야 로스쿨의 도입취지를 살릴 수 있다.
최승재=판사, 검사, 변호사로서 실무경험이 있고 여기에 이론 실력까지 갖춘 로스쿨 교수가 있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나. 실무교수 비율이 반이 안 되는 로스쿨이 대부분으로 알고 있다.
정선균=로스쿨은 ‘법학전문’대학원이기 때문에 실무교수 비율을 높여야 한다. 학문을 제대로 할 사람은 미국처럼 로스쿨 졸업 후 JD(Juris Doctorㆍ법학박사)과정에 진학하도록 유도하는 게 옳다. 이론 교수들이 정년퇴직하면서 실무교수들이 새로 들어오고 있다. 10년 정도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로 생각한다.
최승재=선택과목을 변시에 포함시킨 데 대한 비판이 있다. 3년 안에 기본과목 배우기도 어려운 현실인데, 선택과목까지 듣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다.
정선균=필수과목인 행정법과 선택과목인 환경법을 강의한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학생들이 선택과목까지 변호사시험을 치를 필요가 있나 고민이 든다. 선택과목에는 ‘과락제도’가 있다. 기본법 실력이 출중한데 선택과목 출제 난이도에 따라 어떤 과목은 대박, 어떤 과목은 쪽박이 된다. 이렇게 운에 맡기는 시스템으로 실력 있는 학생이 제때 배출이 안 된다는 것은 너무 안타깝다.
박강훈=선택과목은 이수제가 답이라고 생각한다. 선택과목으로 학생의 합격여부를 결정하는 건 말도 안 된다. 다양한 법 공부를 통해 어느 분야로 진출할지, 기본 법 과목을 통해 리걸 마인드가 어떻게 뻗어 나갈 수 있는지 학습하는 차원에서 선택과목을 배우는 것이다.
김로변=이수제에 동의한다. 선택과목에 변호사시험의 당락이 달려있으니 학생들은 국제거래법처럼 과락이 적은 과목을 선택한다. 하지만 선택과목이 갖는 장점이 분명히 있다. 변호사 실무를 할 때 도움이 된다. 세법, 노동법을 변호사가 된 뒤 스스로 공부할 시간은 없다. 노동 전문 변호사를 채용할 때, 노동법 선택과목 공부했던 사람을 우선적으로 채용할 수도 있다.
정리=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박수현 인턴기자
※대형로펌 취업 변호사들의 출신 대학과 로스쿨에 대한 전수조사 내용은 인터랙티브 그래픽(http://interactive.hankookilbo.com/v/lawfirm/)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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