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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앞서 히말라야 넘은 신라 스님들 있었다니…

입력
2018.11.1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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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준호의 실크로드 천일야화] <33>병풍처럼 펼쳐진 설산 

티베트에서 네팔로 이어지는 우정공로를 따라 초모랑마와 초오유봉이 병품처럼 장족 마을을 감싸고 있다. 왼쪽에서 4분의 1 지점이 초모랑마봉, 5분의 2 지점이 초오유봉이다.
티베트에서 네팔로 이어지는 우정공로를 따라 초모랑마와 초오유봉이 병품처럼 장족 마을을 감싸고 있다. 왼쪽에서 4분의 1 지점이 초모랑마봉, 5분의 2 지점이 초오유봉이다.
스물 다섯살인 장족 청년 짜시(왼쪽) 씨는 5년 전인 2013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초모랑마봉, 일명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다고 한다. 지금은 여행객들에게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스물 다섯살인 장족 청년 짜시(왼쪽) 씨는 5년 전인 2013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초모랑마봉, 일명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다고 한다. 지금은 여행객들에게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히말라야 원정에 나섰던 산악인 김창호 대장의 사고 소식을 들은 것은 귀국 후 열흘쯤 후인 10월 중순이었다. 그의 코리아원정대는 네팔 서쪽 세계 7위 고봉인 다울라기리 봉우리인 구르자히말에서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려다 그만 변을 당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선뜻 사실로 다가오지 않았다. 며칠 전 티베트 우정공로를 거쳐 히말라야 최고 봉우리 초모랑마와 6위 초오유, 14좌 중 가장 마지막인 시샤팡마봉을 둘러볼 때만 해도 마냥 평화롭게만 각인됐기 때문이다. 봉우리 중턱에는 바람에 찢긴 구름이 조각나서 지나갔지만 그저 멋진 풍경일 뿐이었다. 한 발자국 전진하는만큼 위험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몰랐다.

해발 4,300m의 뉴팅그리에서 국경도시 지롱거우로 가는 길은 하루 꼬박 걸렸다. 아기자기한 풍경은 모두 버스 오른쪽 창가 차지였다. 오르막 내리막을 갈 때도 왼쪽은 산, 오른쪽은 전망이 탁트인 계곡이었다. 민가도 오른쪽이 많았고, 서유기에 나올 법한 말발굽 모양의 산들도 오른쪽에서 튀어나왔다. 왼쪽 좌석에 앉은 대가가 너무 가혹했다. 게다가 왼쪽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역광 지대였다.

그런데 세상은 공평했다. 아니 대역전이었다. 오른쪽 풍경이 잽이라면 왼쪽은 헤비급 선수의 카운터 펀치 한 방이었다. 한 두 시간 달렸을까, 가이드가 왼쪽을 보라고 한다.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보니 왼쪽 멀리 설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이 곳이 바로 해발 8,848m 에베레스트로 잘 알려진 초모랑마봉이라고 했다. 이렇게 갑자기 훅 들어와도 되나 싶었다. 직선거리로는 70㎞ 정도 됐다. 도로의 해발 높이가 4,400m 정도 되니 바다 수면과 초모랑마 중간 높이에 서 있는 셈이었지만 거리가 거리다 보니 야트막한 동네 뒷산으로만 느껴졌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8,201m 초오유봉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초모랑마봉을 가로 막은 것은 다름아닌 도로 위의 전깃줄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초모랑마봉을 가로 막은 것은 다름아닌 도로 위의 전깃줄이었다.
해발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14좌 중 가장 꼴찌인 시샤팡마봉 옆으로 구름이 흘러가고 있다. 시샤팡마봉은 8,013m다.
해발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14좌 중 가장 꼴찌인 시샤팡마봉 옆으로 구름이 흘러가고 있다. 시샤팡마봉은 8,013m다.

 ◇히말라야 설산 파노라마 사진 길이만 3m 

그런데 감흥을 갉아먹는 피사체가 하나 있었다. 도로옆 전깃줄이 이중 삼중으로 히말라야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가이드가 다른 포인트로 데려다 준단다. 장족 마을에 내려줬는데 다행히 전신주는 멀리 띄엄띄엄 있었다.

초모랑마 정상에 초점을 맞추고 카메라를 수동으로 전환한 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컷마다 30% 정도 겹치게 찰칵찰칵 찍었다. 12장 정도 찍어 포토샵으로 붙인 후 파노라마 사진을 만들었다. 그냥 광각렌즈로 한 장 찍어 히말라야 부분만 길게 잘라도 되지만 사진 크기가 엄청나게 차이 날 터였다. 이 사진을 인화해보니 가로 길이만 3m 정도 됐다. 동료들의 근무 공간에 기증했다.

심지어 부처 얼굴을 닮은 시샤팡마봉도 왼쪽 차지였다. 8,013m의 이 봉은 주변 봉우리와 어울린 한 장의 사진으로도 너무 멋졌다. 망원렌즈로 당겨봤더니 매 순간 구름이 산 허리에 걸렸다 바람에 쫓겨 흩어지고 있었다.

호수도 하나 더 거쳤다. 티베트에서 여덟 번째로 큰 펠쿠초 호수였다. 시샤팡마를 배경으로 4,595m 높이에 웅덩이를 만든 이 호수들이 바로 생명수였다. 설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호수에 모이고 초지를 적시면서 뭇 생명들이 잉태되는 것이었다. 길에서 만난 양떼, 야크 무리, 풀 뜯는 말도 그 덕에 고원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오는 길에 초모랑마 정상에 올랐다는 장족 청년을 한 명 만났다. 2013년 초모랑마 정상에 올랐다는 짜시(25) 씨는 지금은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열 아홉에 8,848m를 올랐다는 얘기였는데,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등반가의 등정을 도와주는 이들이 가장 등산에 최적화된 사람들일 것이다.

해발 5,000m가 넘는 히말라야자연보호구 안에 오색 타르초가 펼쳐져 있다.
해발 5,000m가 넘는 히말라야자연보호구 안에 오색 타르초가 펼쳐져 있다.
티베트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길은 구불구불 양의 창자를 닮았다.
티베트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길은 구불구불 양의 창자를 닮았다.

 ◇라싸에서 카트만두 가는 자전거족 진풍경 

다시 꼬불꼬불 산허리를 감고 올라가 정상의 타르초를 뒤로 하고 끝도 없는 S자 길을 돌고 또 내려온다. 이제는 해발 2,600m의 지롱거우까지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누군가 “고산적응 억지로 했더니 너무 빨리 내려간다”고 엄살을 피운다.

갑자기 이상한 걸 발견했다. 나무였다. 야트막한 초지의 세계에서 푸른 나무의 동네로 내려오니 산소가 마구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또 다른 낯선 풍경도 들어왔다. 점심 먹으러 사천식 식당에 들어갔더니 인도 사람들이 한 가득 있었다. 수 십대의 지프차를 타고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라싸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지프차가 온통 진흙투성이여서 오프로드를 즐기는 마니아인 줄로만 알았다.

또 다른 진풍경은 자전거족이었다. 그러고 보니 줄곧 우리 버스 뒤에는 자전거를 탄 중년 유럽인 남녀가 있었다. 이들을 지롱거우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 숙소 바로 옆이었는데 10여 명의 자전거족이 라싸에서 카트만두로 가는 중이었다. 짐을 싣는 트럭 하나가 이들을 따라 다녔다. 우리나라에도 자전거족이 가을 길을 누비지만 히말라야는 상상 바깥의 영역이었다. 산 타는 등산가들이야 전문가의 영역이니까 그렇다 치고 자전거는 일반인도 가능한 분야여서 더 놀랐다. 문득 구절양장 오르막길을 어떻게 올랐을지 생각만해도 아득하다.

중국 상하이 인민광장에서 5,000 킬로미터 지점인 티베트 라무의 커다란 이정표 앞에서 커플 자전거족이 잠시 쉬다 출발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인민광장에서 5,000 킬로미터 지점인 티베트 라무의 커다란 이정표 앞에서 커플 자전거족이 잠시 쉬다 출발하고 있다.
티베트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장족 청년이 기념품을 팔고 있다.
티베트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장족 청년이 기념품을 팔고 있다.

역사적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하면 더 놀라 자빠질 일도 있다. 실크로드 개척자로 알려진 혜초 스님 이전에 티베트에서 네팔을 거쳐 천축을 다녀온 신라 스님들이 있었다. 당나라 의정대사의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는 ‘혜륜의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반야발마고 국적은 신라다. 출가한 후 여래를 그려 배를 타고 광동으로 왔고 도보로 장안에 머물렀다. 대흥선사에서 산스크리트어를 배운 후 정관 연간(627-649)에 칙서를 받고 떠나는 현조를 따라 서행했다. 토번국에 이르러 문성공주의 도움으로 천축국으로 가서 마하보리사에서 4년 머물며 ‘구사론’을 배우고 닦았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혜륜과 혜업 현각 현태 스님은 왕현책 루트를 통해 천축국에 들어갔다. 당나라 사신 왕현책은 648년 네팔을 경유해 중천축으로 갔는데, 송첸감포와 문성공주가 이 길을 열어줬다는 것이다. 7세기에 험준한 히말라야를 걸어서 넘어 갔을 신라 스님들을 생각하니 마냥 존경스럽기만 하다.

국경도시 지롱거우에서는 훨씬 사람 냄새가 많이 풍겼다. 장족 전통식당은 분위기부터 토속적이었다. 그 곳에서 야크 수육과 툭바라는 국수를 먹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국경 근처다 보니 네팔음식점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못내 아쉬운 국경의 밤, 샤브샤브 훠궈 집에서 50도 짜리 중국술로 티베트와 미리 작별인사를 했다.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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