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가니스탄이 지난달 20일 어렵사리 총선을 치러냈지만 탈레반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도 그만큼 많았다. 지난주 러시아가 주도해 개최한 아프간 평화회담도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간 평화협정을 추진 중인 미국 정부 일각에서는 아프간 정부에 내년 4월 대선을 연기하도록 제안하는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고 12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WSJ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의 잘메이 할릴자드 아프간 평화회담 특사가 내년 4월20일로 예정된 대선을 연기하는 방안을 아프간 관계자들에게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제안은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을 비롯한 아프간 지도부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가니 대통령의 하룬 차칸수리 대변인은 “민주적 절차의 지속성은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헌법에 나타나 있는 아프간인의 의지에 반하는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라고 논평했다.
미국이 아프간 대선 연기를 제안하는 것은 아프간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겠다는 미국의 기존 입장에 반하는 결정이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가 아프간 대선의 연기를 고려하는 이유는 탈레반과의 평화 협상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아프간 정부는 2020년 재선 도전 이전까지 아프간 주둔군 철수와 역외 군비 축소를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 때문에 미국이 막후에서 평화협상을 서두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탈레반이 가니 정부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고집하고 있어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아프간 정부가 대선을 치르는 것은 대화를 어렵게 하고 안보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게 미국 정부 일각의 판단이다.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 측의 선거를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난 총선에서 선거운동은 물론 선거일 투표소까지 노려 테러를 가했다. 총선일인 10월20일 탈레반의 공격으로 78명이 사망했고 470여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투표소 일부가 개방되지 못했다. 탈레반의 지배력이 강한 가즈니주와 칸다하르주는 사실상 선거를 치르지 못했다.
가니 정부는 올해 총선을 성공으로 평가하고 내년 대선도 치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미국의 제안에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한 아프간 고위 관계자는 “평화 정착이 가능하다면 유연해야 한다. 선거가 평화보다 클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외에 대선을 치르더라도 신정부가 임시정부임을 약정하는 방안, 양측 지도부를 망라하는 임시의회와 정부의 수립 등 다양한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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