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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사용후핵연료 대책] 안전ㆍ경제성 수십년 꼼꼼히 따져, 데이터로 반대측 설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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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사용후핵연료 대책] 안전ㆍ경제성 수십년 꼼꼼히 따져, 데이터로 반대측 설득해야

입력
2018.11.13 16:00
수정
2018.11.14 00:36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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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핀란드가 주는 교훈

사용후핵연료(원자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남은 연료 폐기물)를 영구적으로 매립하는 처분시설을 언제 어디에 지을지 결정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핀란드와 프랑스, 스웨덴뿐이다. 핀란드는 이미 짓기 시작했고, 프랑스와 스웨덴은 건설 허가를 앞두고 있다. 과학적 조사와 지역 의견 수렴에 수십 년 동안 꾸준히 공을 들인 결과다. 원전 운영 초기인 35년 전부터 사용후핵연료 처분 정책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갈등과 상처만 남긴 채 제자리걸음 중인 우리나라 상황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13일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 따르면 올해로 예정돼 있던 프랑스 뷰어 사용후핵연료 심지층처분장의 건설 허가 신청이 최근 내년으로 연기됐다. 사용후핵연료 보관 용기의 안전성 데이터에 일부 전문가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가 신청은 미뤄졌지만, 2015년 이미 기본설계를 마친 만큼 뷰어에 심지층처분장을 짓는 데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다만 2025년 목표인 프랑스의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 착수 시점이 다소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

프랑스는 1991년 제정한 방사성폐기물관리연구법에 따라 우선 방사성폐기물관리기구(ANDRA)가 15년간 방폐물 관리 기술을 연구하면서 후보지 지질조사를 병행했다. ANDRA는 2005년 뷰어에 심지층처분시설 건설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에 대해 국가공공토론위원회가 공론화를 이끌었다. 이해관계자와 지역주민 사이의 정보 교환을 위한 위원회, 기술 활용을 추진하는 공동체 조직도 함께 운영됐다.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1980년대부터 영구처분시설 부지를 조사하다 지역주민들이 반대하자, 1990년 총리가 나서서 부지 선정 과정을 중단했다. 프랑스는 이 실패를 교훈 삼아 정책보다 연구를 우선하는 법을 만든 것이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신중한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았다. 신뢰할 만한 조사가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특정 지역을 거론하고 무산되는 과정을 반복해온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다.

핀란드와 스웨덴 역시 후보지에 대해 과학적, 경제사회적 타당성을 꾸준히 조사한 결과가 최종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운영 중인 원자력발전소가 현재 4기밖에 없는데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을 짓기 시작한 핀란드는 1983년부터 약 20년 동안 부지 조사부터 공을 들였다. 핀란드방사성폐기물관리기업(POSIVA)이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후보지 4곳에 대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로비사 지역의 주민 수용성이 가장 높았다.

그러나 핀란드 정부와 의회는 2001년 다른 후보지 올킬루오토를 영구처분시설 부지로 선정했다. 주민 수용성은 로비사보다 낮지만 부지 활용성과 운반 용이성, 지역경제 효과 측면에서 더 우수하다고 판단했다. 객관적인 데이터 확보와 여론조사, 의회 비준(찬성 159, 반대 3)을 차례로 거친 정책은 그대로 실행됐다. 2004년 올킬루오토에 지하연구시설을 짓고 사용후핵연료 매립 가능성을 확인한 핀란드는 2016년 12월 이를 영구처분시설로 확장하는 건설 공사에 착수했다. 예정대로라면 핀란드는 2023년 세계 최초로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운영을 시작하게 된다.

핀란드가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부지로 결정한 올킬루오토에 운영 중인 온칼로(ONKALO) 지하처분연구시설 내부.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제공
핀란드가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부지로 결정한 올킬루오토에 운영 중인 온칼로(ONKALO) 지하처분연구시설 내부.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제공

스웨덴은 프랑스, 핀란드보다 훨씬 앞선 1977년부터 부지 조사에 들어갔다. 2009년 스웨덴핵연료폐기물관리기업(SKB)이 후보지 가운데 지방의회 의결을 거친 외스탄마와 오스카샴 지역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오스카샴의 주민 찬성률(83%)이 외스탄마(77%)보다 높았다. 그러나 스웨덴 정부는 지질 안전성이 더 높다는 점을 들어 외스탄마의 포스마크를 최종 부지로 지정했다. 6%포인트의 찬성률 차이보다 안전성에 더 무게를 둔 것이다.

2015년 스웨덴원자력규제기관(SSM)의 검증까지 마친 포스마크 영구처분시설 부지는 올 1월 환경법원의 재심의 결정으로 건설 허가에 제동이 걸렸다. 인허가 자료를 보완 중인 스웨덴은 2020년대에는 포스마크 영구처분시설 건설을 시작해 2030년대부터 운영하겠다는 목표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국내 최장기 미해결 국책사업으로 꼽힌다. 경북 경주시 월성 1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한 1983년 논의를 시작했지만, 정치ㆍ사회적 갈등에 밀려 표류해왔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가들이 가장 필요하다고 꼽는 건 과학적 조사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제대로 된 지질조사를 한 번도 하지 못한 채 정치적 판단만 반복해온 게 우리나라의 실패 요인”이라며 “시한이 촉박하더라도 면밀한 지질조사가 뒷받침돼야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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