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영매체들이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 행보를 적극 부각시켰다. 그가 중국을 떠난 뒤에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외교ㆍ경제ㆍ국방분야 수장들과의 대화 내용까지 상세히 공개한 것이다. 이달 말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 지도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멘토 역할을 해온 키신저 전 장관을 극진히 환대했음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와 관영 신화통신 등은 12일 키신저 전 장관이 지난 7일 베이징(北京)에서 시 주석을 접견한 데 이어 지난 10일까지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과 쉬치량(許基亮)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류허(劉鶴) 부총리,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등을 각각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왕 부주석은 외교분야 전반을 총괄하고 있고, 쉬 부주석은 군부 2인자이자 대미 군사관계를 전담하고 있다. 류 부총리는 실질적 경제수반이자 대미 무역협상 당사자다. 키신저 전 장관에 대한 의전 수준이 미국 대통령의 공식 특사를 능가한 것이다.
중국 매체들은 특히 키신저 전 장관이 미중 양국 간 대화와 협력을 강조한 중국 측 인사들의 발언에 공감한 점에 주목했다. 왕 부주석은 지난 10일 중난하이(中南海)에서 키신저 전 장관을 만나 “중미 수교 40여년간 양국 관계는 때로 고초를 겪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진전이 있어 양 국민에 큰 이익을 주고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했다”면서 “중미 양국은 상호 이해를 강화하며 양국간 이견을 적절히 관리해 새로운 양국 관계 발전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키신저 전 장관도 “미중 양국의 공동이익이 갈등보다 더 크다”면서 “평등한 대화와 협상을 통해 양국 간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중국이 키신저 전 장관의 방중 행보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 건 이달 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무역전쟁 타결 등의 기대를 담은 화해 메시지를 발산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시 주석은 키신저 전 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상호 양보’를 구체적으로 언급함으로써 미국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미중 정상 간 담판에서 뭔가 성과가 나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중국 관영매체들이 키신저 전 장관의 방중을 계기로 분위기 조성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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