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11월 14일 한국신문협회와 한국방송협회 회원 대표들이 서울 코리아나 호텔에서 임시총회를 개최, ‘언론개혁’을 다짐하는 ‘건전 언론 육성과 창달에 관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우리 언론은 한말 개화기 이래 80여 년 근대언론사를 통하여 숱한 역사적 격동 속에서도 민족의 자주독립과 민족문화의 향상, 민주주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여 왔음을 자부한다. 이제 새 시대의 문턱에서 산업사회로의 구조적 전환이 진행되고 있는 시대 상황에 창조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우리 언론은 자랑스러운 전통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언론 구조와 문제점을 정면에서 투시하고 자기 혁신의 결단을 과감히 내려야 할 때를 맞고 있다.”
요지는 전국 64개 언론사 중 44개의 폐간 및 경영권 이전이었다. 종합지 신아일보가 경향신문에 흡수됐고, 경제지 서울경제와 내외경제가 각각 한국일보와 코리아헤럴드로 통합됐다. 합동ㆍ동양통신 등이 연합통신으로 통폐합됐고, 동양ㆍ동아방송 등 민영방송이 폐지돼 한국방송공사(KBS)로 합쳐졌다. 언론인 1,000여 명이 그 과정에서 해직됐다.
이틀 전인 12일, 언론사 사주들은 서울의 경우 종로구 소격동 보안사로, 지방은 지역 보안사로 소환됐다. 거기서 저 내용을 수용한다는 각서에 강제로 서명해야 했다. 일부는 서명을 거부, 열흘 넘게 취조실에 감금당한 채 구타와 모욕을 겪기도 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는 계엄∙검열 해제 이후의 언론을 두려워했다. 문화공보부 산하 허문도의 문공위가 저 ‘건전언론 창달안’을 기획했고, 보안사가 집행했다. 자진 결의 형식의 통폐합은 한 달여 실무준비를 거쳐 이듬해 1월 1일 현실화했고, 앞서 12월 31일 정부는 국가에 언론사 등록 취소 권한을 부여한 ‘언론기본법’을 제정했다. 살아남은 언론은 이듬해 3월 제5공화국 출범을 열정적으로 찬미했다.
언론기본법은 1987년 11월 폐지돼 방송법 등으로 대체됐고 폐간된 신문ㆍ잡지도 잇달아 복간했지만, 권력에 의해 재편된 시장 질서를 복원하지는 못했다. 한국 언론이 저 ‘트라우마’를 온전히 극복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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