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이 잿더미로 변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북에서 동시에 발생한 연쇄 산불로 사흘 동안 최소 25명이 숨지고 110명이 실종됐다. 하지만 여전히 불길이 잡히지 않고 있어 피해규모를 가늠할 수 없는 상태다.
미 현지 언론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8일(현지시간) 오후 샌프란시스코에서 북동쪽으로 290㎞ 가량 떨어진 뷰트 카운티에서 ‘캠프 파이어’로 명명한 대형산불이 시작됐다. 이어 9일 로스앤젤레스(LA) 북서쪽 말리부 인근과 벤투라 카운티에서 각각 ‘울시 파이어’와 ‘힐 파이어’가 발화돼 산림과 주택가를 휩쓸었다.
3곳의 산불로 10일 오후 현재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23명,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2명 등 25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화마에 연락이 끊겨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실종자도 110명에 달한다.
특히 캠프 파이어는 캘리포니아의 등줄기로 불리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평화로운 산간마을 ‘파라다이스’를 집어 삼켰다. 코리 호네아 뷰트 카운티 경찰국장은 “주민 23명이 파라다이스 마을과 주변에서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불에 전소돼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주택 안에서 10명의 시신이 발견됐고 3명은 집밖에서, 2명은 화염에 휩싸인 차량 안에서 미처 피하지 못한 채 변을 당했다.
마을을 빠져 나온 주민들은 “사방에서 가스통이 터지고 불기둥이 치솟아 아마겟돈 같은 전쟁터였다”고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전했다. 파라다이스는 은퇴자와 지체장애인 등 주민 2만6,000여명이 살던 곳으로, 마을이 협곡 사이에 자리잡아 불길이 좀체 빠져 나가지 않은데다 대피로가 산길 하나뿐이어서 피해가 컸다. AP통신은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다”고 전했다.
캠프 파이어로 6만7,000여 채의 가옥과 건물이 불타고 424㎢의 땅이 폐허로 변했다. 캘리포니아주 역사상 가장 큰 피해다. 특히 강하고 건조한 바람에 불길이 맹렬한 위력을 유지하면서 산불 진화율은 20%에 그치는 형편이다. 따라서 전체 피해는 서울시 면적(605㎢)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LA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은 북부 캘리포니아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인구 밀집지역을 위협하고 있어 더 큰 피해가 우려된다. 연예인들이 많이 사는 말리부를 포함해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주민 소개령이 내려져 25만 여명이 대피했다. 존 베네딕트 LA 카운티 경찰국장은 “차에 탄 주민 2명이 숨진 채로 발견됐다”고 말했다.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불에 탄 피해 면적은 북부 캘리포니아의 절반 가량인 283㎢에 달한다. 이제 막 초동 진화를 시작한 단계여서 피해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다. 이곳에 부는 산타아나 바람은 산을 타고 넘어온 고온 건조한 성질로, 최대시속 100㎞에 달해 과거에도 이즈음 발생한 산불의 피해를 키우곤 했다.
다만 주말을 거치면서 바람이 다소 잦아들어 소방당국은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마크 로렌젠 벤투라 카운티 소방국장은 CNN에 “자연이 잠깐 휴식을 줬으니 최대한 이용할 것”이라며 “하지만 다시 불길 속으로 강한 바람이 불 것 같다”고 우려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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