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군 활동 막는 첫 조치
카슈끄지 사태 단죄 성격도

미국이 예멘 내전의 출구 전략을 모색하고 나섰다. 최근 휴전 협상을 촉구한 데 이어 이번엔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아랍동맹군 전투기에 대한 공중 재급유 중단 조치도 발표했다. 그러나 현지에선 3년 간 수만 명이 희생당한 예멘의 비극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내전을 종식시키려면 미국이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서 즉각적인 평화 협정 체결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문이다.
미국의 아랍동맹군 전투기에 대한 공중 재급유 중단은 표면적으론 사우디의 전쟁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처음 내놓은 조치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미군은 예멘으로 출격하는 아랍동맹군 군용기 중 20%에 대한 재급유를 담당하고 있다.
다만 미국의 이번 조치는 여러 정치적 포석이 깔려 있다는 평가다. 먼저 사우디에 대한 일종의 ‘단죄’ 성격이다.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을 계기로 국제 사회에서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사우디를 후원하던 미국에 대해서도 책임론이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親) 트럼프 성향의 보수 매체 폭스뉴스는 10일(현지시간) 이번 결정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사우디에 대한 조치를 취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2015년 3월 촉발된 예멘 내전은 예멘 정부군과 후티 반군의 대결이지만, 사실상 사우디와 미국 등 서방 진영과 이란의 대리전으로 흘러왔다. 반군을 돕는 이란의 영향력 확장을 막기 위해 사우디가 예멘 정부군을 대신해 전투를 주도했고, 미국은 후방 지원 역할을 맡았다.
민간인 살상이란 전쟁 범죄 책임론이 번지는 것을 차단하려는 조치란 해석도 나온다. 내전 기간 민간인 피해가 컸던 데는 아랍 연합군이 병원, 결혼식장, 공장 등 비 군사 시설에 대한 무차별 공습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당장 지난 8월엔 연합군의 공습으로 스쿨버스에 타고 있던 수십 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권 단체들은 미국의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전쟁 종식을 위해선 보다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옥스퍼드대 엘리자베스 켄들 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조치는 민간인 살상과 거리를 두겠다는 것이지만, 군사적으로 봤을 때 ‘게임체인저’는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의 휴전 촉구 성명에도 불구하고, 사우디가 이끄는 연합군은 7일 반군 세력의 거점인 항구도시 호데이다를 수백 차례 공습하면서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ABC 방송은 “아랍 연합군이 호데이다 재탈환 작전에 나서면서, 미국의 평화요구를 무시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고 전했다.
미국이 촉구한 정부군과 반군의 평화협정 논의 역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정부군과 반군은 한 달 안에 협상 테이블에 앉으라’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정작 협상을 주도할 유엔특사는 올해 말이나 가능할 것이란 입장을 내놓으며 김이 빠졌다. 미국이 반군을 테러단체로 지정하려는 아이디어 관련해서도 전문가들은 오히려 평화협정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반대 입장이다.
한편 이날 연합군의 대대적인 공세에 반군이 점령해온 수도 사나에 머물던 반군 측 ‘정보장관’이 가족과 함께 정부군 지역으로 망명했다고 예멘 정부 측이 밝혔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