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라이온 킹’ 대구서 개막
200여개 인형으로 동물표현 생생
막이 오르는 순간 관객들은 객석에 앉은 채로 아프리카로 이동한다. 코끼리를 비롯한 초원의 동물들이 관객 옆을 지나쳐 무대까지 몰려 가며 극장을 동물의 왕국으로 바꾼다. 뮤지컬 ‘라이온킹’은 요즘 대형 뮤지컬의 필수요소인 영상 하나 쓰지 않고 사바나 초원을 무대 위로 옮긴다. 9일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라이온킹’은 아날로그에 기반한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무대예술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라이온킹’의 동물들은 퍼핏(인형)으로 표현된다. 연기하는 주체가 사람이라는 사실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무대 위 배우는 기린, 얼룩말, 가젤, 치타 그 자체가 된다. 표정과 몸짓부터 동물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무파사의 집사이자 코뿔소인 자주, 어린 심바에게 친구가 돼 주는 미어캣 티몬 등 캐릭터는 애니메이션에서 막 튀어나왔다고 할 정도로 생생했다. 뮤지컬 ‘라이온킹’의 각색과 연출을 맡은 줄리 테이머는 이런 방식을 ‘더블 이벤트’로 불렀다. ‘라이온킹’에 사용된 퍼핏은 200여개에 달한다.
1998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라이온킹’이 원작 그대로 투어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프리카를 무대에 구현한 힘은 조명과 음악이었다. ‘라이온킹’ 무대 배경을 채우는 건 빛이다. 해가 떠오를 때는 다홍빛이 가미된 빨강이, 무파사가 죽을 때는 검붉은 빨강이 무대를 채운다. 깊은 빛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조명만 700여 개다. 9일 공연에 앞서 대구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도널드 홀더 조명디자이너는 “막힘 없이 펼쳐진 세렝게티의 파란 하늘을 무대에 옮기는 게 중요했다”며 “모던 발레 등 무용 무대에서 쓰이는 조명을 스토리텔링에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심바가 아버지 무파사의 영혼을 마주하며 정체성을 다시 찾는 장면을 완성한 것도 조명이다. 주변 빛을 없앤 상태에서 점 조명을 이용해 무파사의 형상을 나타나게 만든 효과는 감탄을 자아냈다. 홀더는 원작 뮤지컬과 이후 전 세계에서 공연된 모든 ‘라이온킹’의 조명 디자인을 도맡았다. 그는 ‘라이온킹’으로 1998년 토니상을 수상했다.
공연장의 공기를 아프리카로 변화시킨 건 음악이다.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에서 아프리카의 합창 음악을 작곡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레보 엠이 뮤지컬에서 음악을 맡았다. 한국을 찾은 레보 엠은 “음악의 힘이 없었다면 ‘라이온킹’의 구현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어떤 언어로 돼 있든 공감을 자아내는 음악이 가진 힘은 아주 독특하다”고 말했다. 무대 앞에서 퍼커션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아프리카 리듬과 흑인들의 춤, 합창이 한데 모여 아프리카를 무대 위에 녹여낸다.
‘라이온킹’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제작진과 배우들은 공연 현장의 색깔을 더한다. 한국과 대구의 색채를 드러내는 “서문시장에서 파는 커튼 같다”, “번데기 샌드위치를 먹겠다” 같은 대사는 관객들을 웃음 짓게 했다. ‘라이온킹’ 한국 투어는 내년 1월 서울과 4월 부산으로 이어진다.
대구=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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