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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해진 ‘제주살이 열풍’… 이주민 발길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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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해진 ‘제주살이 열풍’… 이주민 발길 뚝

입력
2018.11.11 16:41
수정
2018.11.11 22:06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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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순유입 인구 467명, 5년 만에 최저 

 집값 임대료 폭등… 카페 펜션 ‘포화 상태’ 

[저작권 한국일보]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올레 5코스가 지나는 해안에 위치한 박은정(71ㆍ여ㆍ가명)씨의 펜션 옆에는 모 기업의 연수원과 주택 공사가 한창이었다. 김영헌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올레 5코스가 지나는 해안에 위치한 박은정(71ㆍ여ㆍ가명)씨의 펜션 옆에는 모 기업의 연수원과 주택 공사가 한창이었다. 김영헌 기자.

지난 5일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올레 5코스가 지나는 해안에 위치한 박은정(71ㆍ여ㆍ가명)씨의 펜션 옆에는 모 기업의 연수원과 주택 공사가 한창이었다. 박씨의 펜션 마당 오른쪽을 따라 2m가 넘는 옹벽틀과 공사 가림벽이 길다랗게 버티고 있었다. 공사가 예정대로 된다면 주택 지면이 박씨의 마당보다 1층 높이 정도 더 높아지게 된다. 결국 박씨의 펜션 1층이 지하층이 되고, 신축 주택으로 인해 펜션 방안에서 보이던 탁트인 바다 경관도 심각하게 훼손될 처지가 됐다.

박씨 부부는 50년 넘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2016년 9월 제주로 이주했다. 건강문제도 있고 남은 여생을 조용하게 보내고 싶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10억여원을 들여 펜션을 지었다. 펜션도 그럭저럭 운영되면서 생활에도 별 걱정이 없었지만, 지난 7월 펜션 바로 옆에 공사가 시작되면서 제주살이에 대한 기대감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박씨는 “지하 1층, 지상 2층 주택이 지어지면 사실상 3층 건물이 펜션 앞을 막게 된다. 바다 경관이 보이지 않을 경우 펜션 영업이 힘들 수밖에 없다. 생존권 차원의 문제”라며 “4개월 넘게 서귀포시청 등을 돌면 문제제기를 했지만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제주살이가 지옥살이로 변했다”고 하소연했다.

10여년 사이 제주는 그야말로 ‘천지개벽’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개발의 광풍이 불었다. 한적했던 해안 마을은 물론 제주사람들 조차 잘 몰랐던 중산간 마을까지 펜션과 카페, 음식점 등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곳곳에 타운하우스 등을 짓는 공사장이 넘쳐났다. 그 중심에는 ‘제주살이’ 열풍이 있었다.

[저작권 한국일보]제주지역 순유입 인구 현황. 그래픽=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제주지역 순유입 인구 현황. 그래픽=신동준 기자

하지만 그 열풍은 지금 역풍으로 변했다. 제주살이에 대한 낭만을 쫓아 이주민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개발은 더 가속화하면서 주택가격 폭등과 교통문제, 쓰레기난 등 부작용을 낳기 시작했다. 이주민들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이 같은 문제들이 점점 심각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기대했던 제주살이 낭만은 온데간데 없고, 이주 전의 삶보다 더 나빠지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제주행을 포기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제주에서 4년째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김성윤(37)씨도 요즘 들어 제주살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와 연관된 강력사건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투숙객들이 크게 줄어 영업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김씨가 알고 지내던 이주민이 운영하던 게스트하우스 4곳이 이미 폐업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임대료는 계속 오르는데 매출은 오히려 뚝 떨어져 버틸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제주로 온 이주민 중 상당수가 손쉽게 창업할 수 있는 숙박시설, 음식점, 카페 등으로 몰리고 있다. 이주 초기 때만하더라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이주민이 늘면 늘수록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집값이나 상가 임대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고 있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주민들은 늘고 있다“며 “이주 계획을 갖고 제주에 왔던 사람들도 생각을 접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통계청과 제주도에 따르면 지난 9월 제주지역 순유입 인구(전입자-전출자)는 467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227명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는 못하는 수준으로, 2013년 6월(455명) 이후 5년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해 3분기 도내 순유입 인구도 2,17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353명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제주지역 순유입 인구는 2011년 2,343명에서 2012년 4,876명, 2013년 7,823명, 2014년 1만1,112명, 2015년 1만4,257명, 2016년 1만4,632명, 지난해 1만4,005명 등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순유입 인구 감소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 1,038명을 시작으로 2월 997명, 3월 1,136명, 4월 977명, 5월 1,026명, 6월 766명, 7월 929명, 8월 774명, 9월 467명 등 크게 줄면서 월평균 1,000명을 넘지 못했다. 제주 순유입 인구는 2014년 이후 4년 연속 1만명을 돌파했지만, 올해는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제주 이주민의 역사’를 저술한 정은희 제주문화교육연구소장은 “제주로 이주하는 가장 큰 이유가 제주의 자연환경 속에서 누리는 여유로운 삶의 추구이지만, 이주열풍으로 인구가 급증하고 개발 붐이 일면서 제주다움이 사라지고 있다”며 “미디어 등을 통해 만들어진 제주의 이상적인 모습과 현실은 딴 판일 수밖에 없는 만큼 현실적인 계획을 세운 후 이주를 결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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