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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일터에서 사람의 보호

입력
2018.11.12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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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CJ대한통운 대전물류센터에서 택배 작업을 하던 하청 근로자가 후진하던 트레일러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3개월 동안 이 회사에서 3명의 근로자가 작업장에서 사망했다.

산업재해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조직화된 작업 조건에서 일어난다. 예컨대 전통적인 농업 사회에서 작업 속도는 개인이 조절하고, 작업 기구는 생명 또는 신체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으며 개인이 충분히 장악할 수 있는 수준의 위험성을 가진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기계화된 생산 조직이 나타나고, 효율성을 높이고자 작업 속도를 사람이 아닌 기계의 성능에 맞추면서, 근로자들은 상시적 위험 속에 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모던 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이 컨베이어 벨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은 그 무렵 출현한 기계화된 작업 속도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와 소외를 풍자한다.

기업 조직에서 근로자가 생산요소의 하나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생산요소로서 근로자는 기업에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얻어 생활한다. 이것이 자본주의 경제질서 아래서 인간이 처한 1차적 조건이다. 그런데 그런 경제적 자격과 함께 인간은 이성과 존엄성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다. 이른바 인적(人的) 자원이라는 점을 떠나 바라보면, 일하는 사람은 작업장 안팎에서 다른 사람의 동료이고 가족이며 시민이다. 어느 시인의 호소처럼 그는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남편이며 썩 괜찮은 아들이고… ‘사람’인 것이다(제페토, ‘그 쇳물 쓰지 마라’, 수오서재, 2016).

산업안전, 즉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는 요청은 이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10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 법률안’은 이 요청에 대해한 새 정부의 답이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이 법률안은 법의 보호 대상을 근로자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으로 확대하고, 산업안전 책임을 실질적인 지배권을 가진 도급인으로까지 확대하고 그 처벌 수준을 수급인과 동일하게 높였다고 한다. 보호 대상 확대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로 대표되는 새로운 노동 방식에 대한 대응으로 이해할 수 있고(여전히 그 실효성엔 의문이 남아있다), 도급인의 산업안전 책임 확대 및 강화는 늘어나는 하청 노동에 맞춰 관련 규정을 정비한 것으로 보여진다.

경영계는 도급인에 대한 법정형을 높인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하청 근로자를 직접 지휘할 수 없는 도급 사업주에게 수급인과 같은 책임을 지우는 것은 형법상 책임주의 원칙에 어긋나고 안전 관리 측면에서도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영계의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하더라도, 앞의 CJ대한통운 사망 사고에서 짐작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 즉 하청생산 방식의 광범위한 활용과 사업분할을 통한 책임 회피 가능성을 생각하면, 위 법률안을 무작정 비난하기 어렵다. 설령 그들이 속한 수급인이 달라도, 한 작업장에 섞여 일하는 하청 근로자가 겪는 위험은 동일하므로, 그 장소와 하청계약을 지배하는 도급인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 그리고 책임의 정도는 피고인별 형량(刑量)의 결정 단계에서 고려된다는 점에서 법정형을 높인 것만으로 형사법 원칙을 위반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CJ대한통운 사고로 숨진 근로자는 두 달 뒤 정직원 채용을 약속받은 상태였다. 그날 희망을 안고 물류센터로 왔을 때, 그는 그런 참혹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거라고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법이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지 못하고 일터를 안전하게 만들지 못할 때, 성실한 사람에게 불행이 반복되는 이런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을 보호하는 것과 의무를 방기한 기업에게 책임을 묻는 건 별개 문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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