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다가 자신들의 문제가 걸리니 슬금슬금 기어 나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빌미로 살아나 보려고 몸부림 친다.”
지난해 11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던진 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제명 등으로 ‘친박 청산’에 드라이브를 걸자 이에 반발하는 친박계를 견제하려는 의도였다. 이후 한국당은 지방선거 패배와 홍 전 대표의 사퇴, 비상대책위 출범 등 부침을 겪었고, 아직 진행형이다. 아무것도 정리된 게 없다. 하지만 홍 전 대표의 말은 1년 만에 또 다시 스멀스멀 현실화 되고 있다.
친박계를 상징하는 홍문종 의원의 최근 행보가 가장 인상적이다. 홍 의원은 9일 비박계이면서 복당파의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을 겨냥했다. 김 의원이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불가피했다”고 한 것을 두고 홍 의원은 “덩치값도 못한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홍 의원은 “(촛불집회 당시) 폭주하는 광장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자당 소속 대통령을 탄핵 상납하고 당 구성원 전체를 불구덩이로 밀어 넣고 지지자들을 도탄에 빠트렸음을 자백하고 있는 것”이라며 “(김 의원 발언은) 탄핵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해 꿰맞추다 벌어진 대형 참사”라고 말했다. 홍 의원은 지난달 31일 비상대책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도 “당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탄핵에 앞장 선 사람들이 대오각성하고 반성해야 한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해서 탄핵을 받았나. 탄핵백서를 만들어달라”고까지 요구했다.
역시 친박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상현 의원도 9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대한민국 바로 살리기 국민 대토론회’를 열고 공식 석상에 얼굴을 내비쳤다. 윤 의원은 이 자리에서 “친박계와 비박계의 경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어의 몸이 되고 현 혁명정권이 나오면서 끝났다”며 “잿더미에서 ‘니가 옳다 내가 옳다’ 할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윤 의원은 이어 “돌이켜보면 과거 박근혜 정부 성공이 대한민국 성공이란 생각 아래 개인적으로 신의를 중시하는 성격 탓에 참 맹목적인 충성을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또 “21대 총선에서 잘못하면 우리는 헌법 1조 1항에 있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사라질 수 있다”고까지 했다.
홍문종 윤상현 의원은 박근혜 정권 당시 당 사무총장과 원내수석부대표 등 요직을 지내면서 당청간 가교 역할을 맡았던 핵심 친박이다. 보수 몰락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이들이 역설적으로 ‘보수대통합’을 명분으로 당시를 합리화하며 다시 등장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 답은 우선 다음달 예정된 원내대표 경선에서 찾을 수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색깔이 옅어졌다고는 하지만 개별 의원들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다 보면 한국당에는 아직도 친박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다수다. 원내대표에 의지가 있는 의원들 입장에서는 이들의 표심을 무시할 수 없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한발 앞서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나경원 의원이 윤상현 의원 토론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평생 감옥에 있을 정도로 잘못을 했느냐”고 언급해 논란이 된 것도 이를 뒷받침 한다. 좀 더 멀리 보면 내년 2월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에 나설 인사들도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적어도 내년 초 전당대회까지는 핵심 친박들의 보폭이 넓어질 당내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당, 넓게는 보수의 재건을 걱정하는 당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최근 만난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5개를 잡는 출발점에 서야 할 한국당이 또 다시 2개만 잡으려는 모습만 보인다면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의 말대로 보수대통합의 ‘중심성’을 확보할 수 있겠느냐”고.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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