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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에 하루 밤12시 퇴근... 펀드 기준가 산정시간 바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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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에 하루 밤12시 퇴근... 펀드 기준가 산정시간 바꿔주세요"

입력
2018.11.11 23: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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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펀드 기준가격 산정 순서_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펀드 기준가격 산정 순서_김경진기자

“다들 52시간 근무제로 일과 삶의 균형을 노래하고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즐긴다지만 일반사무관리회사에겐 딴 나라 이야기다. 지난 추석 전날엔 제발 새벽 해뜨기 전까지 펀드 기준가격 산정 업무를 끝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통상 오전 9시 출근해 밤 10시 퇴근하고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일한다. 이 경우 그 다음날 오후에 출근하지만 격무 스트레스에 토가 나온 적도 있다. 이러다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펀드기준가격을 매기는 일을 주업으로 하는 ‘일반사무관리회사’ 직원들이 최근 금융위원회에 낸 민원서의 내용이다. 취업준비생 사이에서 금융회사는 고연봉과 높은 복지 혜택으로 선망의 직장으로 꼽히지만 일반사무관리회사는 그렇지 못하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 탓에 1년을 못 버티고 회사를 떠나는 신입직원이 3명 중 1명꼴이어서 업계는 만성적인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업계 소속 600여명 직원 중 63%인 375명이 이름을 올린 민원서엔 이들의 말 못할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들은 민원서에서 “기준가 산출이라는 업무는 하루도 거르거나 지연될 수 없고 틀려서도 안돼 직원들이 고통을 분담하며 새벽까지 업무를 수행하는 비정상적 삶을 살고 있다”고 밝혔다. 퇴근 후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근로 형태를 바꾸려면 펀드의 기준가격을 매길 때 기준으로 삼는 시점을 오후 7시에서 오후 4시로 앞당기는 식의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제안도 담았다.

‘일반사무관리회사’는 현재 신한아이타스 하나펀드서비스 미래에셋펀드서비스 등 8개 회사가 있고, 이들 회사가 기준가를 매기는 펀드의 운용자산 규모는 500조원을 웃돈다. 문제는 현행 펀드 기준가격 산출 제도 아래에선 장시간ㆍ야간 근무가 불가피하다는 데 있다. 업계가 취합한 자료(대형사 4곳)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일반사무관리회사의 기준가 산정 평균 종료시간은 밤 11시34분이다. 하나펀드서비스는 이 시간이 그 다음날 새벽 1시로 가장 늦었다. 밤 12시 이후 일이 끝난 영업일도 4곳 평균 연간 76.5일로 집계됐다. 하나펀드는 이 일수가 126일에 달했다. 대략 1년 영업일이 276일이라고 계산하면 이틀 꼴로 밤 12시를 넘어 퇴근을 한 셈이다.

[저작권 한국일보]회사별 기준가격 산정 평균 종료시간_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회사별 기준가격 산정 평균 종료시간_김경진기자

펀드 기준가격은 말 그대로 펀드를 사고 팔 때 기준이 되는 가격이다. 주식은 장이 끝난 뒤 결정되는 종가(거래일 마지막에 체결된 가격)가 곧 기준가격이 되지만 펀드는 다르다. 한 바구니 안에 주식, 채권과 같은 다양한 자산이 담겨 있다 보니 펀드의 기준가격을 매기려면 이들 자산의 종가를 일일이 확인한 뒤 이를 다시 일정한 계산식에 대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금은 오후 7시까지 체결된 거래까지만 당일 기준가격 산정 때 반영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는 협회 가이드라인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어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기준가 산정을 위탁한 자산운용사들은 오후 8시가 넘어 거래내역을 보내는 일이 숱하다. 이 시간에 거래내역이 들어오면 자연히 종가 취합이 늦어지고 기준가 산정 역시 늦어질 수밖에 없다.

기준가가 밤12시를 전후로 해 매겨진 뒤 다음날 새벽 자산운용사에 전달되는 구조다 보니 운용사나 수탁은행이 기준가를 사전에 검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런 탓에 기준가 오류 공시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는데, 지난해엔 711건으로 1년 전보다 무려 253%나 급증했다.

직원들은 기준가격 반영 시간을 오후 4시로 앞당기고 이후 거래내역은 다음날 기준가 계산 때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야 기준가격 산정을 오후 7시까지 마칠 수 있고 더불어 운용사와 수탁은행의 추가 검증도 가능해 기준가 산정 오류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자본시장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도 기준가 산정을 오후 6시쯤 마친다. 다만 이렇게 하면 실제 거래내역이 기준가에 반영되는 시점이 하루 이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 역시 투자자 혼선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 사무관리회사 임원은 “문제제기를 한 지 3년이 넘었지만 정부는 계속 외면해 왔다”며 “선진국은 최신 정보를 빠르게 반영하는 것보다는 기준가를 정확하게 매기는 데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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