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고시원 화재 7명 사망
9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한 고시원에서 소방 관계자들이 사고 수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열심히 사셨던 분이죠. 어려운 일, 허드렛일도 앞장서서 하시고…”

9일 오후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만난 유모(55)씨는 장인 조모(79)씨의 갑작스런 사망이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조씨는 이날 새벽 종로구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한 화마에 휩싸이면서 변을 당했다. “오후 1시쯤 뉴스로 소식을 접했다”는 그는 “혼자 기거하셨던 분”이라고만 짧게 말했다.

이날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로 사망한 이들이 안치된 서울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등 서울 곳곳 병원에는 울음소리 대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가족과 지인을 잃은 슬픔 못지 않게 ‘홀로 고시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했다’는 가족과 지인들의 자책감이 병원 주변을 짓누르고 있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번 화마에 목숨을 잃은 7명 중 35세 남성을 제외하면 모두 혼자 고시원에 거주하던 54세 이상 중년층이다. 학원가에 위치한 고급 고시원과 달리 인근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남성들이 주로 살았던 터라 사상자 역시 대부분 고령에 홀로 기거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고시원 원장 구모(68)씨 아들 고모(28)씨도 "장기투숙자라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어 사생활은 전혀 알지 못한다”며 “'안녕하세요' 같은 간단한 인사만 나눌 뿐"이라고 말했다.

숨진 3층 거주자 장모(72)씨 역시 홀로 중노동을 하며 삶을 영위했다. 최근까지 이 고시원 3층에 거주해 장씨를 잘 안다는 오부연(56)씨는 “장씨는 오락실 사업을 하면서 큰 돈을 만진 적도 있던 사람이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24시간 사우나에서 청소 업무를 하며 숙식을 해결했다”고 말했다. 2~3년 간의 사우나 생활 끝에 4년 전 고시원이라는 더 나은 보금자리를 마련했지만, 이번 화재에 목숨을 잃었다. 오씨는 “장씨는 생전 가족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국일고시원 2층에서 천만다행으로 소방관 도움을 받아 구조된 부상자 정모(62)씨도 비슷한 처지의 한 사람이다. 2000년부터 부인과 아들을 부산에 두고 ‘기러기 아빠’로 살아온 정씨는 7년 전부터 이곳에서 생활해왔다. 관리비와 전기ㆍ수도세를 따로 내지 않고 매달 방값으로만 내면 되는 40만원은 주변 원룸에 비해 월등히 저렴했고, 김치와 밥도 제공돼 돈을 아끼기엔 제격이었다. “일정한 수입이 없어 한 푼이라도 아끼고 아이들 장가도 가야 해서 고시원에 머물렀다”는 게 정씨 말이다. 정씨는 화마를 피하긴 했지만 양손과 얼굴에 화상을 입었고, 연기를 마셔 시커먼 가래가 나오고 있어 한 달 가량 입원해야 한다.

3년 전부터 장기 투숙해 온 김모(59)씨는 평소처럼 일용직 노동을 하기 위해 오전 5시가 다 되어 눈을 뜨면서 화를 면했다. 밖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고, 이미 창 쪽에서는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 복도와 연결된 방문이 이미 벌겋게 달아 올라 나갈 엄두를 못 낸 김씨는 고시원 쪽방의 작은 창으로 어깨를 비집고 탈출했다. 살기 위해 뜨겁게 달궈진 창틀을 부여잡고 3층에서 1층까지 파이프를 타고 내려왔다. 탈출 과정에서 김씨는 왼손에 2도 화상을 입었다.

오전 5시9분, 탈출에 성공한 그는 땅에 발을 딛자마자 같은 곳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동생에게 “오늘은 일용직을 나가기 어렵겠다”고 연락을 했다. 이후 국립중앙의료원으로 바로 이송됐지만, 보호자가 없어 평소 다니던 교회 목사가 보호자 역할을 했다. 병원 측에 따르면 김씨와 함께 국립의료원으로 이송된 양모(41)씨 역시 가족 없이 혼자 병원 수속 절차를 밟은 뒤 퇴원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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