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니 스타크 ‘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 발표에 충격을 받았으며 사회학이 언제쯤 실증과학이 될 것인지,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 것인지 망연자실했다.”
대체 무슨 발표길래 자신이 오래 몸담았던 사회학계를 두고 저자는 “망연자실했다”고까지 표현할까. 바로 국제사회학협회(ISA)가 막스 베버의 1920년작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네 번째로 중요한 20세기 사회학 서적으로 꼽았다는 발표다.
저자가 보기에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 성립, 발달에 기여했다는 베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저자는 너무나 유명한 그 책에서 전개하는 베버의 논증이라는 게, 끽해야 몇몇 사례 나열과 그에 기반한 추론에 불과했노라고 비판한다. “연구가 아니라 분수 넘치는 추측”이었다는 혹독한 평가다.
이런 유의 이야기를, 사실 우리는 조금씩 알고 있다. 가령 영국의 경제사학자이자 노동당의 존경받는 이데올로그였던 리처드 토니가 1926년 발표했으나 한국에는 최근에야 번역 소개된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한길사)은, 자본주의가 유럽 북부의 ‘개신교 자본가’가 아니라 남부 ‘가톨릭 금융가’의 작품임을 밝혔다. 중세의 수도원 경제가 곧 오늘날 대기업 경영이었으며, 수도원을 토대로 한 금융 시스템이 자본주의를 뒷받침했다는 설명은 중세와 근대 문제를 다룬 역사서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는 암흑기’란 고정 관념을 깨부수고, 중세와 근대 간 ‘단절’보다 ‘연속성’을 강조하는 이들이 숱하게 언급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신교는 자본주의를 낳은 게 아니라, 그저 잘 올라탔을 뿐이다.
‘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란 책의 가치는 드문드문 흩어져 있던 이런 이야기들을 집대성해서, 돌직구로 내려 꽂는다는 데 있다. 계기는 지난해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종교개혁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자, 종교사회학자인 자신이 종교사회학의 창시자인 베버를 공개적으로 저격해야겠다고 결심한 듯하다. 원제는 ‘Reformation Myths’, 즉 ‘종교개혁이란 미신들’이다. 복수형이다. 종교개혁 신화가 한두 가지가 아니란 얘기다.
개신교가 자본주의를 낳았다는 것만큼이나 과학 발전을 이끌었다는 것 또한 허황된 이야기다. 개신교와 과학이 친하다는 주장은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퍼트린 상식인데, 저자가 보기에 이건 순전히 머튼이 탈콧 파슨스에게 배워서다. 파슨스는 베버의 책을 처음 영어로 번역, 미국에 소개한 이다. 사회학이 대체 언제 실증과학이 되겠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한 저자답게 스타 과학자와 그의 종교 관계를 따진 실증 자료를 들이대는데, 이건 책으로 확인해 보길.
사실 종교와 과학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둘이 대립한다는 고정관념이다. 종교는, 중세는, 대학은, 통념과 달리 과학을 장려했다. 과학적 탐구가 신의 위대함을 드러낼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시절 과학이라는 게 연금술 같은 황당한 이야기에 불과했을지라도.
개신교가 개인주의를 낳았다는 신화도 부인한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가 제물로 삼는 건 사회학의 창시자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이다. 사회적 연대감이 무너진 아노미 상황이 자살을 부추긴다는 뒤르켐의 주장은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 국가에서 자살이 더 많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믿음을 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으니 아노미 상황이 더 많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렸다. 저자는 이 논리의 허술함, 뒤르켐 서술 자체의 모순도 조목조목 지적한다. 자신의 주장과 다른 증거가 나오자 뒤르켐이 어떤 이상한 얘기를 늘어놓는지도 설명해 뒀다.
종교개혁은 사실 의심받아 마땅하다. 가톨릭 압제에 저항한 해방 운동이었다면 종교개혁 이후 자유와 관용이 온 유럽 땅을 적셨어야 했다. 하지만 각 국가들은 가톨릭 조직을 고스란히 본 뜬 국교회를 만들어 다른 종교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루터파 교회도, 칼뱅파 교회도 그 어떤 개신교 교회도 예외는 없었다. 가톨릭보다 개신교가 오히려 더 이단에 엄격했고, 무신론자와 이교도에게 가혹하게 굴었다. 종교개혁 이후 사상의 자유와 관용이 증진되기는커녕 실제로는 이단논쟁, 마녀사냥, 종교전쟁이 더 자주, 더 크게, 더 오래, 더 잔혹하게 일어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종교개혁은 ‘신앙의 자유’ 같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교회의 재산’ 때문에 일어나서다. 프랑스, 스페인 사람들이 유독 노예 근성이 있어 교황의 압제를 용인한 게 아니다. 이들 국가는 자국 내 교회의 인사권, 재산권에 상당 부분 개입할 수 있었다. 굳이 가톨릭을 버릴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
로드니 스타크 지음ㆍ손현선 옮김
헤르몬 발행ㆍ254쪽ㆍ1만4,000원
마찬가지로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같은 북유럽 사람들이 유달리 강건한 독립적 기질이 있어 개신교를 택한 게 아니다. 이들은 교회 인사와 재산 문제에 개입할 통로가 없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가톨릭을 버리고 교회를 내 것으로 삼는 게 훨씬 더 수지 맞는 장사다. 루터가 1517년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문에 못 박았을 때 북유럽 지역의 숱한 군주와 제후가 그토록 열광했던 건 이 때문이다. 이제 교회를 통째로 털어먹으면 된다는 복음이다. 동시에 교회가 이젠 국가의 재산이 된 이상, 믿음을 둘러싼 싸움은 더 극렬해진다. 믿거나 말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돈의 문제라서다.
이런 설명은 숱한 반대 증거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 신화가 왜 지금도 강력한가에 대한 힌트기도 하다. 저자는 이 신화가 앞으로도 깨질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면서도 굳이 똑 떨어지는 설명을 내놓진 않는다. 종교개혁이 결국 교회 먹기 싸움이었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결국 프로테스탄트 윤리란 근대 초기 약탈의 역사를 지워 주는 역할을 맡은 게 아닐까. 환영받는 이론이란, 어쩌면 트라우마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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