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두 CEO 안드레이 안드레예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올해 ‘세계 백만장자’ 명단에 데이팅 애플리케이션(데이트 상대나 짝을 찾아주는 앱) ‘바두’(Badoo)의 최고경영자(CEO)인 안드레이 안드레예프(44ㆍ영국)의 이름을 올렸다. 바두는 4억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세계 최대 데이팅앱이다. 안드레예프의 자산 가치는 15억달러(약 1조6,700억원)로, 전 세계 1,561번째 부자로 선정됐다.
포브스는 러시아 출신인 안드레예프를 ‘현대판 큐피드’로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사랑의 화살을 쏘는 대신 스마트폰, 위치기반 그리고 얼굴인식 시스템 기술을 통해서 남녀 사이를 이어주고 있다.
안드레예프가 바두에 장착한 무기는 특별한 것도 아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가까운 거리에 있는 데이트 상대를 찾는 것은 이제 흔한 서비스다. 안드레예프가 눈길을 끄는 것은 바두를 개발하기 전 온라인 쇼핑, 홈페이지 분석, 인터넷 광고 등 다양한 사업 모델을 줄줄이 성공시켰다는 사실이다. 현재 그는 바두 외 또 다른 데이팅앱에도 투자하고 있다.
◇가장 비밀스러운 러시아 출신 사업가
안드레예프는 유명세답지 않게 좀처럼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편이다. 더 쉽고 빠르게 관계를 맺도록 돕는 게 사업의 목표지만 정작 그 자신은 대중과 관계를 맺길 꺼린다. 그의 모국인 러시아 언론도 안드레예프를 ‘가장 비밀스러운 서방의 사업가‘로 묘사할 정도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태동하는 스타트업 창업자와 달리 안드레예프의 성장 경로도 독특하다. 그는 러시아와 스페인, 영국 등 광활한 유럽 대륙을 누비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러시아 모스크바 출신인 안드레예프는 1974년 수학과 교수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에 몰두했는데, 그 수단이 라디오였다. 14세 안드레예프는 친구들과 기계 부품을 모아 라디오를 만들고 지붕에 안테나를 설치하는 것에 푹 빠져들었다. 모스크바대에 진학해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흥미를 붙이지 못했다. 18개월 만에 중퇴한 후 안드레예프는 부모님이 정착해 있던 스페인으로 이주하며 본격적인 사업 구상을 시작했다.
안드레예프의 사업은 90년대 인터넷 혁명과 발맞춰 변모했다. 그의 첫 작품은 95년 설립한 온라인 쇼핑몰 ‘바이러스’(Virus)다. 본격적으로 가정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자 안드레예프는 온라인매장에서 러시아 고객을 상대로 컴퓨터와 주변 기기를 팔았다. 첫 사업은 꽤 성공적이었다. 2년 만에 수십만달러에 바이러스를 매각한 뒤 다음 아이템을 찾아 나섰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인터넷 공간은 안드레예프의 창업 실험실이나 다름 없었다. 그는 99년 설립한 ‘스파이로그’(SpyLog)를 통해 홈페이지 관리인이 방문자의 접속 경로와 홈페이지 활용을 추적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놨다. 안드레예프는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구글 애널리틱스’(Google Analytics)의 전신이 바로 스파이로그라고 말한다. “스파이로그가 구글 애널래스틱의 할아버지격”이라는 얘기다.
온라인 쇼핑, 홈페이지 분석, 그 다음은 인터넷 광고였다. 안드레예프는 2001년 스파이로그를 나와 이듬해 광고회사 ‘비건’(Begun)을 설립했다. 그는 인터넷 광고시장에 획기적인 상품을 내놨다. 방문자가 특정 단어를 검색하면 광고비를 지불한 업체의 정보가 홈페이지 상위에 노출되는 방식으로, 현재 인터넷 광고의 초기 모델이다. 구글은 2008년 비건 인수를 추진했지만, 러시아 투자회사가 매각을 막기 위해 비건에 투자하면서 거래는 무산됐다.
◇데이트를 위해 지갑을 여는 사람들
안드레예프는 기존 사업에서 축적해 온 수익 모델을 2006년 설립한 바두에 그대로 녹여냈다. 검색어 광고처럼 광고주들이 상품을 알리기 위해 인터넷 홈페이지의 공간 또는 시간을 구매하는 원리가 바두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바두 사용자 스스로가 상품이 되는 셈이다. 바두에 접속하면 다른 회원들의 프로필을 볼 수 있는데, 근거리에 있는 사용자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지기 위해서는 화폐 개념의 크레딧을 충전해 지불해야 한다. 자신의 계정을 방문할 수 있는 사용자 수 한도를 늘리거나, ‘온라인 접속 중’ 표시를 보여주려고 해도 결제가 필요하다.
스페인에서 바두를 구상한 안드레예프는 다소 보수적인 스페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사업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다. 출시 초기 바두는 사용자들이 자신의 사진을 공유하는 평범한 사이트로 출발했다. 그러나 바두는 곧 2007년 구글의 ‘가장 빨리 증가하는 검색어 리스트’에서 ‘아이폰’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자신감이 생긴 안드레예프는 바두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능을 추가했다. 그 결과 스페인을 넘어 프랑스, 이탈리아 등 이웃국가까지 사용자들이 빠르게 증가했다. 한 매체에서 바두와 관련된 기사를 쓰자 터키에서 3만명의 회원이 한꺼번에 가입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실 안드레예프와 바두에게 사용자들의 관계 맺기는 이윤 추구의 수단이 된다. 하지만 안드레예프는 바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관계를 위해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는 페이스북보다 더 ‘사회적(social)’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안드레예프는 “페이스북은 가상의 세계에서 알고 지내던 지인들과 소통하지만, 바두는 당신이 거리로 나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고 역설한다.
◇바두의 확장, 데이팅앱의 ‘연대’
바두는 체급이 낮은 후발주자 데이팅앱에 핵심 기술을 전수하고 수익을 배분하는 방법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자주 방문하는 장소를 기반으로 데이트 상대를 찾는 ‘허글’(Huggle), 남성 동성애자들을 연결해주는 ‘채피’(Chappy)가 바두의 기술을 적용한 서비스다. 안드레예프는 “(허글, 채피 등) 앱 사업자들이 마케팅을 하고 가입자들을 모을 때 바두는 가입자들이 어떻게 플랫폼에 머물게 할지, 서비스에 지불하게 할 지를 책임진다”고 설명했다.
업계의 이목을 끌었던 가장 흥미로운 결합은 바두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틴더‘(Tinder)의 공동창립자 휘트니 울프(29ㆍ미국)와 함께 2014년 출시한 ‘범블’(Bumble)이다. 범블은 오직 여성 가입자만 남성 가입자에게 메시지를 먼저 보낼 수 있는 ‘여성주도적’ 서비스로 데이팅앱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범블이 ‘페미니스트 데이팅앱’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 같은 서비스 차별화는 울프와의 개인사와 관련이 있다. 울프는 2012년 틴더 창립에 참여했지만 2년 뒤 돌연 회사를 떠나 공동 창립자였던 저스틴 마틴(32)과 숀 라드(32ㆍ이상 미국)를 성희롱 혐의로 고소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안드레예프가 울프에게 동업을 제안하면서 범블은 탄생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범블의 가치는 10억달러(약 1조1,200억원)까지 상승했고, 가입자는 2,200만명에 이르고 있다. 안드레예프는 범블의 대주주로 회사의 79%를 소유하고 있다.
언젠가는 이들이 바두의 가입자까지 빼앗아가는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할 수 있지만 안드레예프는 천하태평이다. 데이팅 앱 시장의 전체 크기를 키우기 위해서라면 필요한 능력을 얼마든지 기여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기술 지원을 하고 있는 회사들을 직접 인수할 생각도 없다. “골목 모퉁이에 새로운 식당이 생겼다고 해서 단골식당(바두)을 안 가는 건 아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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