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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 날림처리ㆍ나눠먹기

입력
2018.11.08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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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획정위 회의록 입수] 

 국회의장 ‘이틀내’ 시한 요구에 우왕좌왕 

 여야 4대 4로 맞서다 “주고받자” 발언도 

 무기명 표결 시간 걸린다며 거수로 뚝딱 

20대 총선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 회의록에는 여야 추천 위원들이 정파적 이해관계로 3분의 2 이상 찬성 의결에 거듭 실패하자 과반 찬성으로 결정방식을 바꾸는 과정이 담겨있다. 한 위원은 “이런 상황을 제 가치와 신념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심정도 담겨있다. 참여연대 제공
20대 총선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 회의록에는 여야 추천 위원들이 정파적 이해관계로 3분의 2 이상 찬성 의결에 거듭 실패하자 과반 찬성으로 결정방식을 바꾸는 과정이 담겨있다. 한 위원은 “이런 상황을 제 가치와 신념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심정도 담겨있다. 참여연대 제공

“시간이 이틀도 안 된다. 촉박하니 구역조정, 경계조정안 만드는 소위원회는 생략하고 바로 심사하자. 획정위 사무국(선관위 직원이 파견) 안이 마련돼 있다.”(선거구획정위원장)

“25일까지가 의무냐.”(획정위원)

“25일 소관 상임위인 안전행정위 심사와 26일 본회의가 잡힌 듯하다.”(선거구획정위원장)

“실제로 한 40시간인가. 난 자신이 없다. 이리 후다닥 해버리라는 게 말이 되느냐.”, “시간을 맞춰도 분명 졸속이라 볼 것이다.”(획정위원)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선거구와 조금 양보할 선거구를 정리해 줄여나가자.”(획정위원장)

“주고받자.”(획정위원)

지난 2016년 2월 23일과 25일 오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악청사 회의실 302호에서 벌어진 풍경의 일부다. 국민의 대표를 뽑는 룰을 정하는 엄중한 사안이 이처럼 졸속 날림으로 진행된 것이다. 당시 선거구획정위는 23일 여야의 극적 합의가 이뤄지자 국회의장으로부터 선거구획정 기준을 뒤늦게 받고서 주말 전인 25일 본회의 처리가 되게끔 획정안을 넘겨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다. 총선이 불과 50일 전이라 더 늦춰질수록 재외선거인명부 작성 등 선거일정상 차질이 예상되던 때였다. 회의에선 ‘합리적 선거구획정안을 25일 낮 12시까지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라’는 국회 공문이 언급됐고, 위원들의 불만이 거세게 쏟아졌다.

한국일보가 7일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구획정위의 선거구획정안 의결 과정이 담긴 회의록(1~30차)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선거구획정 과정에 이처럼 주먹구구식 정파 간 입김이 작용하는 실태가 낱낱이 드러났다. 참여연대가 선거구획정위 회의록 공개를 거부한 중앙선관위를 상대로 4ㆍ13총선 뒤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9월 승소해 받은 자료(위원 이름은 비공개)다.

20대 총선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 회의록 일부. 참여연대 제공
20대 총선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 회의록 일부. 참여연대 제공

회의록을 보면 다급한 일정에 위원들이 장시간 국회를 성토하는 대목이 곳곳에 나온다. “국회는 우리 요구는 단 한번도 시일대로 안 해주는데 왜 우린 국회가 제시한 일정에 맞춰야 하나. 솔직히 납득이 안 간다.”

결국 선거구획정위는 시간 부족으로 25일 “날짜를 못 지킨다”는 문서를 국회로 보낸 뒤 28일에야 선거구획정안을 국회로 넘겼고, 3월 2일 본회의에서 늑장 처리됐다. 국회는 선거구획정안 제출 법정기한 2개월 전인 2015년 8월 13일까지 가이드라인(지역구 수, 지역구와 비례대표 간 의석비율 등)을 달라는 선거구획정위 요구를 6개월 넘게 외면하다가 획정위에는 초단기 획정안 송부를 독촉한 셈이다.

20대 총선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 회의록 일부. 참여연대 제공
20대 총선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 회의록 일부. 참여연대 제공

◇3분의 2 이상 찬성을 과반 찬성으로

선거구획정위는 첨예한 정파별 이해관계가 걸린 개별 지역구 결정을 3분의 2 이상 찬성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돌리는 방식을 적용했다가 적절성과 법 조항 해석을 싸고 위원들간 격론이 붙기도 했다. 선거법 제24조는 ‘3분의 2 이상 찬성 의결한 선거구획정안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고 돼 있다. 23일 회의에서 몇몇 위원들은 “시간이 걸려도 3분의 2 원칙을 지키자”고 호소한 반면, “개별 지역구는 과반으로 결정해도 무방하고, 국회에 넘기는 최종획정안만 3분의 2로 정하면 된다”고 반대 해석도 나왔다.

한 위원은 “이런 상황은 제 가치와 신념으로는 수용이 힘들다. 너무 심하다”고 괴로움을 토로했다. 곧이어 “정회”라는 요구가 회의실에 울렸고, 일부 위원은 “부드럽게 가자. 너무 경직됐다”고 했다. 획정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위원 9명 중 여야 대리인 격 인사들이 현역의원들 생존과도 직결되는 민감한 지역구 획정 문제는 4 대 4로 갈렸다“며 “3분의 2 찬성 룰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되니 효율성을 내세워 과반 찬성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5 대 4가 되는 쪽의 승리인데, 결국 관행적으로 위원장을 맡는 선관위 위원 1명이 승패를 가르는 ‘캐스팅보트’ 역을 맡은 정황이 회의록 곳곳에 보였다. 뻔한 회의에 표결 방식도 흐트러졌다. “무기명 표결은 시간이 너무 걸린다”며 거수로 의결하거나, 대충 “이의 없으십니까”라고 물어서 정하자는 의견도 나왔고, 그대로 됐다.

20대 총선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 회의록 일부. 참여연대 제공
20대 총선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 회의록 일부. 참여연대 제공

◇쫓기듯, 원했듯… 결국 나눠먹기 판

여야 간 나눠먹기 정황도 드러났다. 선거구획정위원장은 당시 25일 오후 “(국회에) 오늘 중 (끝내려)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상황이 굉장히 난감하다”며 “쟁점이 덜한 부분들은 각자 양보해서 줄이자. 남은 9개 선거구에 각자 우선순위를 정해달라고 했다.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선거구와 조금 양보할 수 있는 선거구를 정리해 줄여가자“고 했다. 회의에선 급기야 각자 “주고 받자”는 노골적인 말들도 나왔다. 한 위원은 “덜 복잡한 것과 복잡한 것을 같이 두고 진행하자”고 했다. 때때로 위원들 간 의견 대립이 격해지면 정회가 됐는데, 한 획정위원은 “정회 시간에 진영별로 모여 각자 작전을 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며 “의견이 좁혀지지 않은 지역구 20개 정도는 하나 주고 하나 받기 게임이었다”고 증언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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