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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메르켈 빠지자 ‘유럽 지도자’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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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메르켈 빠지자 ‘유럽 지도자’ 행보

입력
2018.11.07 18:09
수정
2018.11.07 19:4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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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앞줄 오른쪽 두번째) 프랑스 대통령이 6일 프랑스 북동부 베르됭의 두오몽 국립묘지에 들어서고 있다. 5일부터 시작된 1차 세계 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 주간을 맞아 참전 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계획된 격전지 순회 방문의 일환이다. 베르됭=AFP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앞줄 오른쪽 두번째) 프랑스 대통령이 6일 프랑스 북동부 베르됭의 두오몽 국립묘지에 들어서고 있다. 5일부터 시작된 1차 세계 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 주간을 맞아 참전 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계획된 격전지 순회 방문의 일환이다. 베르됭=AFP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과 각을 세우며 유럽 대륙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자타공인 유럽 지도자로 활약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빈 자리를 대신하겠다는 정치적 야심을 쏘아 올린 것이다. 프랑스 내부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인기를 만회하고자 외부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1차 세계 대전 종전 기념 주간 첫 행선지인 프랑스 북동부의 베르됭을 방문한 자리에서 유럽 통합군 창설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직전 라디오 연설에서도 이런 주장을 폈다.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심지어 미국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유럽 군대 창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베르됭은 1차 대전 당시 희생자 규모가 컸던 최대 격전지역이다. 이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미국에 대한 불신도 드러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구 소련과 맺었던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을 파기하겠다고 밝혔는데 가장 큰 피해자는 유럽”이라며 “유럽은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우리의 주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자체 방어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유럽군 창설 주장은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유럽연합(EU) 내부에선 꾸준히 유럽 국가들만의 독자적 방위 태세 구축 논의가 계속돼 왔고, 마크롱 대통령 역시 지난해 9월 유럽 공동 신속대응군 창설을 제안한 바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회원국들에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고 나토 무용론을 주장하며 미국과 유럽의 방위동맹을 흔드는 것에 대한 위기감에 따른 것이다. 다만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위원장의 대변인인 마르가리티스 시나스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유럽군 창설 제안은 환영할 만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국방협력은 일단 군사 장비 조달 및 연구, 자금 지원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외신들은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11일 파리에서 열리는 1차 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이 참석하는 상황에서 선제 공격을 날렸다는 분석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유럽 지도자’ 행보는 30%대로 추락한 국정지지도를 끌어 올리기 위한 대내용 카드란 해석도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전 세계를 휩쓴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을 비판하며 극우 정치 세력 때리기 선봉에 나섰는데 이 역시 국내 정치 상황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끄는 중도신당인 ‘레퓌블리크 앙마르슈’(LREM·전진하는 공화국)의 지지율이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RN)에 뒤지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선 마크롱 대통령을 겨냥해 테러를 모의한 혐의로 극우 성향 용의자 6명이 체포되기도 할 만큼 극우 세력의 기세가 맹렬하다. 영국 가디언은 마크롱 대통령이 내년 5월 유럽의회선거에서 강경한 극우세력에 맞서는 진보주의자의 리더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1차 대전 최대 격전지였던 북동부 도시 14곳에 대한 순회 일정을 잡은 것도 민심을 다독이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연금제도와 공공 부문 개혁에 대한 반발을 국가에 헌신하는 강력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로 설득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그러나 프랑스 서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가디언은 목수 직업을 가진 베르됭 시민 알도(59)가 “마크롱은 부자들 얘기만 듣는다. 다음 선거에 투표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고 소개했다. 또 마크롱 대통령이 지나는 곳곳에서 학생과 근로자들이 몰려 나와 “프랑스의 불안이 느껴지냐”는 항의를 쏟아냈다. BBC 방송은 “반대세력들은 마크롱이 프랑스 국민들의 일상적 삶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며 “당장 17일부터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전국적 시위가 예고돼 있다”고 전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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