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제품 사용하면 후사하겠습니다”,“은혜(선정)는 잊지 않겠습니다”,“납품 외 추가로 설치해 드리겠습니다”,“선배(교장) 친척이 소개한 공기정화장치가 최고라고 하네요. 부탁합니다”
전남 도내 일선 학교 교직원들이 공기정화장치(공기청정기) 설치를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업비가 자그마치 100억원대에 달하면서 공사를 따내려는 업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학교를 찾아와 ‘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남도교육청은 최근 미세먼지로부터 안전한 교육환경을 조성하겠다며 도내 22개 시ㆍ군 유치원과 초중고교, 특수학교 등 1,011개 학교에 학급 당 200만원씩의 공기청정기 설치비를 내려 보냈다. 이들 학교의 학급 수는 5,217개로 여기에 책정된 사업비만 104억3,400만에 달한다. 이 중 여수지역이 701개 학급에 14억원으로 가장 많고, 순천시 687학급 13억7,000만원, 목포시 589학급 11억7,000만원 등이다.
도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설치비를 지급하면서 학교장 책임 아래 납품ㆍ설치업체를 선정하라고 지시했다. 이렇다 보니 납품업체 영업사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학교장들에게 자사 제품의 홍보와 함께 “보답하겠다”는 은밀한 제안을 하기 일쑤다. 이권이 걸리다 보니 지역 정치인이나 지역 언론사 등 힘 깨난 쓴다는 곳의 청탁도 이어지고 있다. 한 초등학교 교장은“전직 선ㆍ후배, 도의원, 기업인 등 평소 알고 지내는 분들과 수많은 업체 직원들이 방문해 학교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할 실정”이라고 호소했다.
학교장들은 또 어떤 공기청정기를 설치할지를 놓고도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공기정화장치 종류가 20여개가 넘는 데다, 전문지식이 없어 선택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선정 절차도 복잡해 일선 교직원들 사이에선 “도교육청이 복잡한 업무를 일선 학교에 떠넘겨 일만 늘어났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실제 공기청정기 선정은 제품 선호도 조사와 물품선정위원회 심의 등을 거친 뒤 3개 이상 제품을 골라 이 가운데서 결정하도록 돼 있다. 유치원의 한 관계자는“납품 대상 업체도 많은데 만약 잘못 제품을 선정해 말썽이 생기면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 같아 대부분 학교에서 불만이 나오고 있다”며“도교육청이 할 수 없으면 지역 교육청에서라도 우수업체 3곳만 선정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 관계자는 “지난달 16일 화순에서 1,000여명의 교장단을 대상으로 공기정화장치설치 관련 연찬회를 마쳤다”면서“학생들을 위한 일이니 일선 학교장들이 책무감에 따라 선정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경우 기자 gw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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