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였던 1936년 문을 연 뒤 82년간 서울 영등포역 인근을 지킨 밀가루 공장이 ‘문화 공장’으로 재탄생한다. 서울시는 2013년 공장이 충남 아산으로 이전한 뒤 줄곧 비어 있던 문래동 ‘대선제분’ 영등포 공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다고 6일 밝혔다.
이날 시가 발표한 도시재생 구상안에 따르면 1만8,963㎡ 규모 대지, 건물 23개 동으로 구성된 옛 대선제분 영등포 공장엔 앞으로 공연장, 전시 공간, 식당과 카페 등이 들어서게 된다. 서울에 몇 안 남은 산업 유산을 재창조해 영등포 일대에 부족한 문화 인프라를 확충하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계획이다.
과거 영등포는 다양한 공장이 자리 잡은 제조 산업 거점이었다. 영등포의 산업 중 경성방직이 ’의(衣)’를, 대선제분은 ‘식(食)’을 대표했다. 하지만 경성방직이 이전하면서 대신 쇼핑몰이 들어섰고 아파트 단지도 잇따라 생기면서 과거의 모습은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이 가운데 현재 대선제분 공장만이 1930년대 당시 원형을 온전히 유지한 채 남아 있는 상태다.
대선제분 영등포 공장 재생 사업은 상징적 시설물인 원통형 사일로(곡물 저장 창고), 대형 창고 등 기존 건물을 최대한 유지, 활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1단계로 전체 23개 동 중 14개 동을 식당과 카페, 상점, 역사박물관 등으로 만든다. 1936년 건축된 정미 공장은 기획 전시장으로, 창고는 창업 지원 공간과 공유 오피스로 활용된다. 사무동은 제분 산업을 중심으로 서울 근현대산업 역사를 기록하는 전시관으로 쓴다. 대형창고 건물에는 식당과 갤러리 카페가 들어선다. 광장에선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 행사와 문래동 예술인과 기술 장인이 참여하는 플리마켓, 공연을 연다.
대선제분 영등포 공장 재생 사업은 서울시의 1호 ‘민간주도형’ 재생 사업이다. 석유비축 기지를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마포 ‘문화비축기지’, 오래된 고가 차로를 보행 공원으로 만든 ‘서울로 7017’ 등 서울의 대표 도시재생 사업은 지금까지 주로 서울시가 주도했다. 이번 사업은 대선제분 창업주의 손자인 박상정 대표가 운영하는 ‘아르고스’가 사업비 전액을 부담해 재생 계획 수립부터 리모델링, 준공 후 운영 전반을 주도한다.
서울시는 공공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도시재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보행, 가로 환경 등 주변 인프라를 정비한다. 시민들이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과 2호선 문래역을 통해 대선제분 공장으로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박상정 대표는 “런던 테이트모던, 뉴욕 첼시마켓 등 (공장을 문화시설로 탈바꿈한) 해외 여러 사례를 연구한 결과 벤치마킹을 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기존 건물의 기능과 토지 형태, 역사는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이를 담아내기 위한 새로운 틀과 공간의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삭막해져 가는 도심에서 삶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도록 돕는 공간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2016년부터 아르고스와 멈춰선 대선제분 영등포 공장의 활용 방안을 협의해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대선제분 영등포 공장이 산업화 유산의 원형을 살리고 문화의 가치를 덧입힌 서울시의 또 다른 도시재생 아이콘이자 문화 플랫폼이 되고, 더 나아가 지역경제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공장 재생을 위한 1단계 공사는 다음달 착공해 2019년 하반기 완료된다. 사일로 등 대규모 구조물을 활용하는 2단계 재생 사업 계획은 현재 아르고스와 서울시가 수립 중이다. 아르고스 측은 2단계 사업의 착공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5, 6년 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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