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론 미중 무역전쟁, 안으론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
“한국 경제가 과거 유럽식 ‘복지국가 함정’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지금 한국 경제는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라는 ‘외우’(外憂)와 고도성장과 적절한 분배가 동시에 이뤄졌던 동아시아 자본주의 패러다임이 종말을 맞는 ‘내환’(內患)에 처했다.”(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경제 전문가 네트워크 ‘경제추격연구소’ 소속 국내 경제학자 34명이 내년 한국 경제에 대해 대외적 근심과 대내적 걱정이 중첩된 ‘외우내환’ 상태라고 진단했다.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금융시장 위기,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실물경제 위기까지 덮칠 경우엔 한국 경제가 심각한 ‘이중 위기(더블 크라이시스)’에 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근 교수는 6일 서울 종로구 버텍스코리아에서 열린 ‘2019 한국경제 대전망’(21세기북스 발행)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경제는 향후 5년간 성장률이 떨어지고 실업 문제도 커지는 매우 안 좋은 상황에 처해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내환보다 외우가 더 부정적인 상황”이라며 △자유무역주의 퇴보와 보호무역주의의 성장 △포퓰리즘ㆍ민족주의 성장에 따른 민주주의 퇴보 △미중 갈등에 따른 새로운 냉전체제의 등장을 주요 위험(리스크)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국에서의 자본 탈출 현상과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실물의 위기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며 “한국은 개방형 시장경제를 선택해 자유무역주의와 민주주의를 양대 축으로 하는 체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왔지만 새로운 패러다임(보호무역주의-포퓰리즘)에 대한 준비가 돼 있는지는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외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정책 당국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정부의 정책 대응이 중요한 상황인데도 이제까지 경제 ‘투톱’(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칭)이 갈등하면서 엇박자를 냈고 불확실성에 대처할 리더십이 취약해진 상황”이라며 “연말 인사에서 어떤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하는지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저자들은 내환에 해당하는 문제로 단기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물가상승을 동반한 경기침체), 중기적으로는 유럽식 고실업 함정 우려를 꼽았다.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전 노동연구원장)는 “유럽이 고질적 고용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노동구조 개혁을 피할 수 없었다”며 “양극화ㆍ불평등 완화를 위한 좋은 일자리 창출, 소득주도 성장 계획은 보이지만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대한 정책적 노력과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장기적 내환으로는 복지-조세부담-국가채무 간 ‘재정 트릴레마(세 가지를 동시 충족할 수 없는 상황)’가 꼽혔다. 초(超)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복지를 늘려야 하는 우리 입장에선 조세 부담률을 올리거나 국가채무를 늘려야 하는 어려운 기로에 섰다는 것이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복지를 늘리기 위해서는 조세 부담을 높이는 스웨덴 경로를 따르거나 국가 채무를 늘리는 일본의 방식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데 우리 경제는 두 가지 모두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