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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너] 아날로그가 시간을 견디는 방법, 필름 카메라 수리 장인 이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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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너] 아날로그가 시간을 견디는 방법, 필름 카메라 수리 장인 이기훈

입력
2018.11.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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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필름 카메라 수리 장인 이기훈

“몇 년 됐다고 일일이 다 기억하나요? 100년 된 카메라도 있고 90년 된 거, 1900년대 초에 나온 것부터 지금까지 카메라라면 다 고치죠.”

지난 10월 24일 서울시 중구 필동1가에 위치한 아날로그 카메라 전문 수리점 ‘삼성사’를 40년 넘게 운영해 온 이기훈(58)씨가 서랍 안에 들어있던 오래된 아날로그 카메라를 보여주며 말을 꺼냈다. 그의 작업실에는 20세기 초부터 생산된 온갖 종류의 아날로그 카메라들이 곳곳에 쌓여있었다. 수리를 기다리고 있거나, 수리가 불가능하거나, 수리를 맡기고도 찾아가지 않은 다양한 사연들이 있는 카메라다.

아날로그 카메라들이 이기훈 장인의 수리를 기다리고 있다[저작권 한국일보]
아날로그 카메라들이 이기훈 장인의 수리를 기다리고 있다[저작권 한국일보]

이씨는 1976년부터 현재까지 아날로그 카메라를 전문으로 수리해오고 있다.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충무로 카메라 업계가 크게 휘청일 때도 이씨는 지금의 자리에서 카메라를 고쳤다. 이제는 외국에서도 카메라를 고치기 위해 찾을 정도로 카메라 수리 분야의 전문가가 된 이기훈씨. 최근에는 젊은 세대에서 필름카메라 열풍이 불고 있어, 오래돼 고장 난 부모님 카메라를 들고 이씨를 찾는 이도 많아졌다고 한다. 40여 년의 세월 동안 아날로그 카메라와 함께 오직 한 길만 걸어온 그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Q. 아날로그 카메라 수리를 시작한 지 몇 년이나 되셨나요?

카메라 수리 해온 지는 40년 좀 넘었죠. 중학교 졸업하고 공장 다니다가 한 카메라 수리업체에서 밥도 주고 잠도 재워준다고 해서 배우기 시작했죠. 목구멍에 풀 칠하려고 갔던 거죠. 예전엔 이쪽 충무로에 촬영 스튜디오들이 많았어요. 거기서 주로 펜탁스 67 중형 카메라를 많이 썼죠. 그 카메라 수리를 담당하다 보니까 입소문이 났고 내 사업장을 시작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87년도에 회사에서 나와서 충무로에 자리를 잡았죠.

고장 난 카메라를 수리하는 이기훈 장인 [저작권 한국일보]
고장 난 카메라를 수리하는 이기훈 장인 [저작권 한국일보]

Q. 국내에서 아날로그 카메라 수리는 제일 잘한다고 자부하시나요?

제 전문 분야는 콘탁스, 펜탁스죠. 내가 전부 다 잘 고친다고 할 순 없어요. 카메라라는 게 아시다시피 카메라 제조 회사만 해도 수십 개가 되고 한 회사에서 나오는 모델 만해도 초창기에서 나온 모델부터 지금까지 수백 개는 되는데 그걸 다 이해할 줄 알아야 하거든요. 카메라 수리 분야에서도 내가 몇 가지는 자부하는데 다른 사람이 더 잘하는 품목도 있죠. 나만 혼자 잘한다고 할 순 없어요. 그래도 내 전문 분야는 확실히 자부해요. 펜탁스, 콘탁스 고치러 외국에서도 찾아오니까.

Q. 40여 년 동안 카메라 수리만 해오면서 힘들었던 일은 없었나요?

2000년대 초반 디지털카메라 나오고 나서 한동안 힘들었죠. 충무로에 스튜디오도 많이 사라졌어요. 여기 보면 빈자리가 많잖아요. 예전에 여기 직원들 꽉 차서 일했어요. 디지털카메라 나오면서 부속 값하고 인건비 하면 남는 게 없었어요. 직원들 다 그만두고 저는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니까 계속 해온 거죠. 호황기 때 저녁이면 만나서 소주 한잔하던 친구들이 다 사라졌죠.

이기훈 장인은 아날로그 열풍이 불면서 젊은 사람들이 필름 카메라를 들고 많이 찾는다고 말한다 [저작권 한국일보]
이기훈 장인은 아날로그 열풍이 불면서 젊은 사람들이 필름 카메라를 들고 많이 찾는다고 말한다 [저작권 한국일보]

Q. 요즘엔 필름 카메라 수리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나요?

우연히 길이 연결되더라고요. 다시 요새 필름 아날로그 카메라가 유행하면서 젊은 학생들이 많이 찾아오는 편이에요. 이거 할아버지가 쓰시던 건데 무조건 고쳐야 된다고 그런 학생들도 있고 자기 부모님이 어릴 때 찍어줬던 카메라 들고 오는 청년들도 있죠. 저희는 카메라 보면 대충 감이 오는 게 있어요. 카메라를 맡기러 온 손님이 한 30대쯤 돼 보이고 카메라가 30년 정도 된 모델이면 ‘아 이거 이 사람 부모님이 아기 때 모습 찍어주려고 산 카메라구나’ 딱 알죠. 부모님이 쓰던 걸 고쳐 사용하려고 가져오는 거죠.

이기훈 장인은 필요한 부품이 없을 때 직접 부품을 깎아 만들어 수리를 한다.[저작권 한국일보]
이기훈 장인은 필요한 부품이 없을 때 직접 부품을 깎아 만들어 수리를 한다.[저작권 한국일보]
약방에서 쓰는 오동나무 서랍장이 작업실 한 켠에 놓여있다. 서랍장 안에는 각종 카메라 부품들이 종류에 따라 분류되어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약방에서 쓰는 오동나무 서랍장이 작업실 한 켠에 놓여있다. 서랍장 안에는 각종 카메라 부품들이 종류에 따라 분류되어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Q. 오래된 필름 카메라가 다시 사랑 받는 이유가 뭘까요?

필름 카메라들은 부품이 없으면 깎아서라도 부품을 만들어요. 간단하고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좋은 기계죠. 디지털카메라는 컴퓨터처럼 보드 자체를 교환해야 하기 때문에 부품이 없으면 수리가 안되죠. 그냥 쓸데없이 복잡하게 만들어놓고 폼만 잡는 요즘 기계들은 오래 못 가요. 디지털카메라는 시간이 지나면 값어치가 떨어지지만 필름 카메라는 쓰면 쓸수록 가치가 올라가죠.

Q. 필름 카메라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필름 카메라는 장난을 안치죠. 디지털은 맘대로 그릴 수가 있잖아요. 포토샵을 하든 뭘 하든 사기를 칠 수 있는데 필름 카메라는 내가 찍으면 찍은 그대로가 원판에 남죠. 필름 카메라 쓰는 사람들이 무조건 필름만 쓰는 이유예요.

아날로그 카메라 수리 장인 이기훈 [저작권 한국일보]
아날로그 카메라 수리 장인 이기훈 [저작권 한국일보]

김창선 PD changsun91@hankookilbo.com

박기백 인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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