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정 상설협의체 첫 회의, 웃으면서 할 말 다한 160분
“60점.”
5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의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를 마친 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어느 정도 만족했나, 몇 점을 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다만 그 역시 “대통령께서도 대단했다. 5당 원내대표가 거기에 가서 그 많은 시간 논쟁을 벌였는데 다 수용하고, 점심을 오후 1시 넘어서 시작했다”고 치열하면서도 진지했던 회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했다.
오전 11시 20분 시작돼 예정된 시간을 한 시간 넘겨 오후 2시에야 끝난 회의에선 경제ㆍ사회 등 민생 현안과 남북관계 관련 논의가 진지하게 이어졌다. 회의를 겸한 오찬에는 통합과 화합의 의미로 탕평채가 나왔고, 김정숙 여사가 지난해 만든 곶감도 후식으로 나왔다.
이날 회의 후 12개 항의 합의문이 나오기까지 청와대 정무라인과 여야 원내대표들 간 치열한 사전조율 작업이 있었다. 지난 1일 조율이 시작돼 주말까지 막판 논의를 했다고 한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회의에서 못다한 얘기를 정리한 서류를 봉투에 담아 문 대통령에게 따로 전달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회의 후 “첫 출발이 아주 좋았다. 적어도 석 달에 한 번 모이는 것을 제도화하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 석 달 단위로 국정 현안을 매듭지어가는 걸로 하자”며 여야정 협의체 정례화를 거듭 강조했다. 다음 회의는 내년 2월 개최하되, 논의할 일이 생기면 그 전이라도 만나겠다는 뜻도 전달했다.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등 경제 합의 다수
이날 회의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된 주제는 경제ㆍ민생 현안이었다.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우리 정치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협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특히 요즘, 경제와 민생이 어렵고 남북관계를 비롯해서 국제정세가 아주 급변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협치를 바라는 그런 국민들의 기대가 높다”고 운을 뗐다.
가장 눈에 띄는 합의는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등 보완 입법 조치를 마무리한다’는 대목이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회의 후 브리핑에서 “무리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기업의 위기 상황에 대해 탄력근로제를 6개월에서 1년 정도 확대 적용할 수 있지 않나”라며 “관련 입법을 연내 마무리하는 것을 사실상 청와대가 수용하고 경제 위기에 대해 대통령도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정기국회에서 처리할지, 내년 2월 국회에서 처리할지는 논의해봐야겠지만, 우리 당으로선 일단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합의하고 대화를 통해 입법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다른 톤으로 이야기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도 규제혁신 신속 추진과 탄력근로제 합의에는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결국 국회에서 입법 줄다리기가 불가피해 보인다.
국정감사에서 야당이 제기했던 고용세습 등 취업비리 근절, 채용 공정성 제고 입법도 뜨거운 논쟁 거리였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고용세습, 채용비리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에 우리가 대답해줘야 한다”며 국정조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에 홍영표 원내대표는 “그 자리는 국정조사를 논의할 자리가 아니고, 우리 당이 받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고용세습, 채용비리는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고 철저히 하겠다”면서도 “정부가 전수조사를 시작했고, 결과는 내년 1월쯤 나올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홍 원내대표는 덧붙였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철회 혹은 시행 시기 유예를 요청했으나 문 대통령은 구체적 언급이 없었다고 한다.
◇한국당 탈원전 비판에 문 대통령과 설전
사회 현안 중 여야 간 이견이 가장 컸던 부분은 ‘탈원전 정책’이었다. 합의문을 두고 문 대통령과 김성태 원내대표 간 신경전이 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고 한다.
한국당은 탈원전의 경우 산업 경쟁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 표명과 함께 속도 조절을 하는 방향으로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금처럼 대통령과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원전산업을 위기로 내몰아선 안 된다는 측면에서 과감한 수정을 요구했다”면서 “문 대통령께서 임기 중 2개의 원전 건설을 마무리하고, 2개를 착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을 바꿀 수 없다. 탈원전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며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은 분명히 했다고 한다. 이에 김성태 원내대표는 ‘재조정ㆍ재점검’이란 표현이 합의문에 들어가야 한다고 맞섰다. 문 대통령과 김 원내대표 간 논쟁이 이어지자,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기초로’ 하자는 내용을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가 절충안으로 제시하면서 합의문구가 마련됐다고 한다.
반면 여야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동수당을 확대해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대를 이뤘다. 문 대통령도 한국당의 전향적인 입장에 대해 “(아동수당 지급을) 100% 전 대상자로 확대하기로 한 것은 높이 평가한다”고 추켜세웠다. 다만 아동수당을 초등학교 6학년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한국당 주장에 대해선 각 당이 입장 차를 보였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김성태 원내대표가 수혜 대상을 초등학교까지 확대하자는 내용을 (합의문에) 포함시키자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대략 계산해보면 12조원이 소요돼 간단히 결정할 수 없었다”며 “(국회에서) 세부적으로 논의하다 보면 검토할 게 많으니, 수혜 대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한국당 간 대립으로 처리가 지연됐던 방송법 개정안은 바른미래당의 요구로 합의문에 포함됐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그동안 KBS 사장 인사청문회 문제가 얽히며 (논의가) 지연됐다”며 “이 문제가 일단락됐으니 방송 공정성 확보를 위해 정기국회 내 처리하자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 서울 답방 北美 협상에 달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내 서울 답방과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 이슈를 두고도 논쟁이 이어졌다. 홍 원내대표는 “대통령께선 ‘(김 위원장 답방은) 현재진행형이다. 연내일지, 이후가 될지 아직은 판단할 수 없지만 일단 연내 이뤄진다는 것을 가정하고 준비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또 “국회가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안을 더 논의해야 한다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환영해줬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반면 김성태 원내대표는 “대통령께서 확고하게 김정은 연내 방문은 우리 입장과 북측 입장만 갖고 되지 않는데 앞으로 북미 간 협상 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며 “북미협상을 뒤로 한 채 남북 정상회담을 우선시하겠다는 입장은 결코 아니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 서울 답방 과정에서 국회 연설 추진과 관련, 김성태 원내대표는 “국립묘지 헌화와 천안함 유족 국민 사죄를 전제로 국회 차원에서 협의할 문제”라고 답했다.
평양공동선언과 남북 군사합의서 정부 단독비준 처리에 대한 김성태 원내대표의 문제제기에 문 대통령은 당위성을 중심으로 적극적 입장을 표명했다고 한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구축을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한다’는 합의에 ‘한미 간 튼튼한 동맹과 공조’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은 한국당 요구였다.
◇임종석 실장, 靑 인사 두고 野 쓴소리
청와대 참모와 인사를 두고도 야당은 쓴소리를 쏟아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청와대 인사의) 고유 직분을 넘은 자기정치 행위에 대통령의 문책과 경고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유럽 순방 중 내각 인사를 대동해 비무장지대를 방문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겨냥한 얘기다. 임 실장과 이해찬 민주당 대표, 이낙연 총리의 주말 정례회동을 두고도 “권력 사유화라는 불필요한 오해 불식 차원에서 ‘이너서클’ 형성을 중단해달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김성태 원내대표의 발언을 메모하면서도 별다른 답변은 없었다고 한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인사 문제를 지적하며 “정부 인재풀이 편협해 국민이 탕평인사로 보지 않는다”며 “대통령 취임사대로 널리 인재를 찾아 적재적소에 맞는 인사를 삼고초려 해달라”고 주문했다. 교체설이 도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선 ‘투톱 교체가 시장을 중시한다는 사인이 됐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했다. 아울러 2년 넘게 공석인 청와대 특별감찰관 임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여당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생기면 필요 없다며 유보하지만 건강한 견제와 (정부의) 성공을 위해 하루 속히 임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상원 기자 ornot@hankookilbo.com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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