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란 ‘핵 협정’ 파기하고
로하니 정권 교체하려 제재 강행
중국 등 이란 원유 비중 높은 나라
6개월간 한시적으로 예외 인정
韓, 결제 에스크로 계좌유지 성과
EU는 제재 이탈 위한 방안 논의
“美, 무리한 조치” 전망은 엇갈려
이란의 생명줄인 원유 수출을 금지하는 미국의 제재가 5일 0시(현지 시간ㆍ한국 오후 2시)부터 시행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라고 공언했던 제재다. 하지만 한국, 중국, 일본, 터키 등 8개국이 향후 6개월간 한시적 예외를 인정받아 첫 단추부터 일단 구멍이 뚫렸다. 미국의 무리한 조치라는 지적이 비등한 가운데 실제 이란을 얼마나 옭아맬지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은 앞서 지난 8월 이란의 금, 석탄, 자동차 거래를 차단한 데 이어, 이번에 원유, 금융, 항공, 선박 등 제재 분야를 전방위로 확대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이번 제재 대상 명단에 개인과 법인 등 총 700여곳이 올랐다고 밝혔다. 제3국의 기업, 개인도 이란과 거래할 경우 달러 결제는 물론 미국시장 접근 자체가 차단된다. 특히 원유는 이란 경제의 버팀목이나 마찬가지다. 원유 수출로 재정의 3분의 1을 충당한다.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는 모든 나라의 ‘이란산 원유수입 제로(0)화’를 이루기 위해 계속 협상을 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로써 2015년 7월 핵 합의 타결로 빗장을 풀었던 이란의 수출길이 다시 막히게 됐다.
원유 수출을 틀어막는 트럼프 정부의 노림수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핵개발 중단을 압박하기 수월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자금이 충분치 않으면 핵 프로그램 재가동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미지근한 합의”라며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체결한 이란 핵 협정 파기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경제난으로 내부 분열을 부추겨 눈엣가시인 이란 강경파에 타격을 입히는 효과도 있다.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 기업들이 ‘이란이냐, 미국이냐’를 놓고 선택을 강요하는 엄포에 못 이겨 속속 이란을 떠나면서 트럼프의 계산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BBC는 “트럼프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과 해외 테러를 지원해 온 이란 혁명수비대를 질식시키려 한다”고 분석했다.
물론 미국의 최종목표는 이란의 로하니 정권을 교체하고 핵 협정도 다시 체결하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주 “이란에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BBC는 “이란에서는 경제보다 이념이 먼저”라고 전했다.
더구나 8개국을 예외로 남겨두면서 국제 공조가 느슨해졌다. 올해 1~6월 이란의 원유 수출 비중은 중국 26%, 인도 23%, 유럽연합(EU) 19%, 한국 11%, 터키 7%, 일본 5% 순이다. 이 중 EU를 제외한 5개 나라와 함께 이탈리아, 그리스, 대만이 당분간 제재를 면제받았다. 미국 내에서도 “이란에 대한 경제적 집행유예”(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EU도 제재를 피하기 위해 달러로 거래하지 않는 특수목적회사 설립 방안을 6일 재무장관회의에서 중점 논의한다. 보란 듯이 대열에서 이탈하는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칼자루는 미국이 쥐었다. 8개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 감축 규모를 미 정부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고삐를 죄면 이란은 외화 유입이 줄고, 반대로 고삐를 풀면 미국의 동맹국에 숨통을 틔우는 일석이조의 효과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이 이란산 원유 수입 허용치를 바닥까지 줄이면 이란 국민들의 불만이 가중될 것”이라며 “말은 강하게, 행동은 유연하게 하는 트럼프 특유의 거래 기술로 미국이 재미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어쨌든 제재 예외국에 포함된 한국은 이란산 원유 수입량을 줄이는 대신 결제에 사용되는 이란 중앙은행의 원화 에스크로 계좌를 유지하는 ‘패키지 딜’ 방식을 적용받는다. 국내 기업들은 2010년 10월 이란과의 합의에 따라 에스크로 계좌를 통해 수출입 대금을 원화로 주고받아 왔다. 따라서 계좌 거래가 중단될 경우 모든 교역이 막힌다. 외교부 당국자는 “에스크로 계좌를 유지하면 원유는 물론 비제재 품목의 수출과 인도적 지원을 위한 금융거래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제재가 임박하면서 우리 기업이 받지 못했던 수출 대금 2,300억여원을 돌려받는 문제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지난해 우리가 수입한 이란산 중질유 등 석유류는 83억달러(약 9조3,300억원) 규모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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