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 A요양원의 대표 B씨는 고가의 벤츠 승용차를 리스한 보증금과 사용료 등 7,700여만원을 요양원 운영비로 냈다가 지난해 도 회계감사에서 적발됐다. B씨는 심지어 나이트클럽 술값과 골프장 이용료, 자녀 교육비, 여행비 등 1,800만원도 시설 운영비로 썼다. 하지만 현재 경기도가 B씨에게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는 “부정 사용한 돈을 시설운영비로 돌려놓으라”는 개선명령뿐. 경기도 관계자는 “요양원들의 운영비 사적 사용이 심각하지만 영업정지 등 강력한 처분을 내릴 근거가 없으니 같은 비리가 반복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전국에 노인요양시설이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이 시설운영비를 쌈짓돈처럼 개인경비나 유흥비로 사용해도 현행법상 처벌 근거가 미약해 지방자치단체들이 단속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5일 경기도가 김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에게 제출한 ‘2017년 노인요양시설 회계관리실태 특정감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관내 216개 시설을 감사해 135건의 회계질서 위반 사례가 적발됐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대표적인 것이 B씨처럼 시설 운영비를 사적 사용한 경우. 총 15개 시설에서 3억8,000만원의 부정사용이 적발됐지만 현행법(사회복지사업법 제40조)상 1ㆍ2차 개선명령, 3차 시설장 교체 명령만 가능했다. 그러나 시설장 교체 명령을 내리더라도 시설을 설립한 대표가 시설장만 교체하면 되기 때문에 설립자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는다.
비리를 사전에 막기 위해 ‘클린카드(보조금 전용카드)’를 사용하라고 강제할 수도 없다. 장애인복지시설처럼 국가 또는 지자체 보조금이 지원되는 곳은 2011년 7월부터 유흥업소나 노래방, 골프장에선 결제를 할 수 없도록 클린카드로 경비를 지출해야 한다. 그러나 노인요양시설은 국가 보조금이 아닌 국민이 내는 장기요양보험재정으로 운영돼 보조금 전용카드 의무 사용 대상이 아니다.
사립유치원처럼 민간요양시설 역시 사적 재산과 공적 자금 투입의 경계가 모호했다. 현재 노인요양시설의 대표자가 시설 설립 전 건물을 매입하느라 발생한 대출금을 추후 시설운영비로 상환하는 것은 부정행위에 해당된다. 경기도는 관내 장기요양기관 중 80%(669개소)가 개인운영시설인데, 법인시설에 비해 회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상당수 시설이 이런 방식으로 자금을 차입해 시설을 설립할 만큼 만연한 비리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적발해도 지자체가 내릴 수 있는 조치는 1ㆍ2차 개선명령, 3차 시설장 교체로 똑같다.
이 때문에 경기도는 지난해 감사 이후 회계비리가 적발되면 시설의 업무정지, 지정취소, 폐쇄명령, 장기요양급여 제한 등 더 강화된 처분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복지부에 제안했다. 하지만 일률적인 처분 강화에 복지부는 회의적이다. 규정이 강화돼 시설 폐쇄명령이 내려지면 입소한 노인들이 당장 갈 곳이 없어질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클린카드 사용도 경기도 측은 “사회복지사업법의 적용을 받는 모든 시설로 대상을 확대하자”고 제안했으나 복지부 측은 “재정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기준으로 관리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장기요양급여비가 지난해 처음으로 5조원을 돌파한데다 앞으로도 빠르게 불어날 전망인 만큼 강력한 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지현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사무처장은 “복지부의 방관하는 태도가 오히려 민간시설 비리를 부추기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김광수 의원도 “복지부가 더 철저한 관리대책을 마련하고 요양시설 운영자들에게 회계업무에 대한 지도감독 및 교육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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