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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개혁 마지막 기회] 의원 배지 수는 늘리고, 특권은 줄이자

입력
2018.11.06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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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한국 사회에 맞는 의원정수는 

 비례대표 확대 위해 증원 불가피… 국회가 나서 국민 설득해야 

심상정 위원장이 30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심상정 위원장이 30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의원 정수 확대는 정치권에서는 ‘금기’다. 의석 수를 늘리자고 말했다간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소장파 의원들도 쉽게 입을 떼지 못한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설명도 안 통한다. 헌법기관 중 국민 신뢰도 최하위를 기록할 정도로 국회에 대한 불신이 큰 탓이다. 의원 300명이 한해 6,000여억원 가량 예산을 쓰는 것도 가뜩이나 고까운데, 정수를 늘리면 혈세가 더 낭비될 거란 불신이 크다.

국민 여론은 오히려 의원 숫자를 줄이라고 명령한다. 국회의장실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해 9월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은 현재 의원정수 300명이 많다(74.9%)고 봤다. 적정하다는 응답은 16.7%, 적다는 응답은 6.4%에 그쳤다.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방안 중 하나인 ‘세비동결을 전제로 한 의원 증대’에 대해서도 반대(74.0%)가 찬성(23.4%)의 세배를 넘었다.

하지만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이들은 의원정수를 유지하겠다는 건 지금의 권력과 특권을 유지하겠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승자독식의 현행 선거제도, 적대적 공존관계로 엮인 의석구조로는 밥값하는 국회, 국민의 일꾼인 국회의원을 기대하기 힘들다. 노무현, 노회찬 같은 정치개혁에 공이 큰 정치인들이 의원 정수를 늘릴 것을 제안했던 이유다.

현재 정치권에서 유력한 선거제도 개혁 방안으로 거론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서도 의원 정수 확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때문에 어렵게 마련된 선거제도 개혁의 골든타임을 흘려 보내지 않기 위해서 제도 개혁의 전제가 되는 정수 확대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국회의원은 힘이 센데, 국회는 힘이 없는 비정상적 의회를 정상화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논의를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 여론을 들어 의원 정수 조정을 무조건 반대하는 건 지금의 권력과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핑계”라며 “의원 정수를 포함해 권력과 특권 내려놓기까지 늦기 전에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학계와 시민사회는 공감, 정치권은 머뭇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의원정수 확대 필요성에 대체로 공감한다.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으로 꼽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서는 비례대표 숫자가 충분히 확보돼야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현행 지역구 253석을 줄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의원 정수를 늘려 지역구 의원수를 줄이지 않고 비례대표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선거제도 개혁 방안이라는 이유에서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학과 교수는 “의원 정수 확대 없이는 선거제도 개혁의 주체이자 대상인 의원들에게 선거제도를 바꾸라고 요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현재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다양한 계층의 정치 의사를 대표하기 위해서라도 의원 정수 확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세계 주요국과 비교해도 한국의 의원 정수는 적정 규모의 60~70%에 그치는 수준이다.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총인구와 국내총생산(GDP) 규모, 정부 예산, 공무원 수 등을 비교한 적정 의원 수는 368~379명으로 추산되는데 적정 의원수를 따지면 50명 이상 늘어야 한다”면서 “OECD 내에서 인구나 경제규모가 한국과 비슷한 국가들의 경우 독일 598명, 프랑스 577명, 영국 650명 등으로 의원 정수가 우리에 비해 훨씬 많다”고 의원 정수 확대론에 힘을 실었다.

OECD 주요국가 선거 제도 및 의원 정수. 그래픽=송정근 기자
OECD 주요국가 선거 제도 및 의원 정수. 그래픽=송정근 기자

이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속내는 복잡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현실적인 방법으로 의원 증원 밖에 답이 없다는 게 의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지만,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높다 보니 여야 모두 국회의원 증원 여부를 결정짓지 못하는 것이다. 정개특위 논의 과정에서도 여야 공히 비례성 확대의 원칙에는 동의하면서도 의원 정수 문제 쟁점화를 꺼리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국회 한 관계자는 정수 확대 논의를 머뭇거리는 분위기에 대해 “의원정수와 비례대표 정원에 대한 여야입장은 갈리지만 결론은 늘 지역구 축소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지역구의석은 필요에 따라 늘려왔으면서도 비례 의석 확대를 위한 정수 확대 논의는 국민 여론을 빌미로 외면하며 기득권을 챙기기에 급급했던 모습이 또 되풀이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권은 줄이고 일꾼은 늘리자 

이런 분위기에서 의원 정수 화대 화두를 적극적으로 꺼내 들며 금기 허물기에 나서는 쪽은 정의당이다. 정의당은 양당제의 벽을 실감한 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위한 정수 확대가 민심 왜곡을 막고 비례성을 높이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당론으로는 비례의석을 120석으로 늘리고 지역구 의석을 일부 줄여 240석으로 만들어 총 의석수를 360석으로 늘리는 안을 내놓은 상태다.

여기에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고 진짜 일꾼을 늘리자는 안도 제시됐다. 의원정수는 늘리되 의원들에게 제공하는 세비를 현행 300명 기준으로 동결하는 세비총액제한제를 실시해 의원 한 사람당 예산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인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정치에 대한 국민 불신이 높은 건 맞지만 그 자체가 정수 확대 불가를 주장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면서 “국민 불신이 높을수록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고 민의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역시 정치권이 눈앞의 여론에 기대 의원 정수 공론화를 금기시할 게 아니라 국회의 역할을 선제적으로 마련해 국민을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복경 서강대 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의원 정수확대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새로운 정치 세력이 정치에 활력을 불어 넣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자 입법부의 기능 강화 차원에서도 필요한 부분”이라며 “정치권이 개혁의 의지가 있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가 막 시작된 현 시점에 의원정수 문제를 공론화해 적정 의원수에 대한 합의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도 “정수 확대는 단순히 밥그릇을 늘리는 차원이 아니라 현재 정치 상황에서 유권자의 비례성과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며 “의석을 늘리되 불신의 원인인 특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국민 동의를 얻어가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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