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A씨의 시험지 유출사건 정황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학부모들은 A씨의 쌍둥이 딸의 성적을 조속히 ‘0점’ 처리하라고 학교 측에 요구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 후 조치를 취한다면 딸들이 조작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물론 졸업까지 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 사건은 올해 7월 치러진 숙명여고 1학기 기말고사 때 당시 교무부장이던 A씨의 쌍둥이 딸들이 각각 2학년 문과와 이과 전교 1등을 차지한 것에 학부모들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쌍둥이 자매 중 동생은 1학년 1학기 때만 해도 전교생 460명 중 59등이던 성적이 2학기 전교 2등, 2학년 1학기 기말고사에서 이과 전교 1등으로 수직 상승했다. 언니는 1학년 1학기 121등이었다가 2학기 전교 5등, 2학년 1학기 기말고사에서 1등으로 성적이 급등했다. 이들이 오류를 수정하기 전 답을 적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답안지 유출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서울시교육청은 특별감사를 벌여 단순한 의혹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 8월 말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A씨 딸들의 휴대폰에서 영어시험 문제의 답이 적혀 있는 메모를 확보했고, A씨가 올해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홀로 교무실에서 40분쯤 야근한 사실을 확인했다. A씨가 야근한 날은 중간고사 답안지를 교무실 금고에 보관하기 시작한 날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시험문제 유출 의혹이 불거진 8월 A씨가 자신의 집 컴퓨터를 교체한 것으로 파악, 증거인멸 시도인지 조사 중이다.
숙명여고 학부모들은 경찰 수사와는 별개로 학교 측이 문제가 된 쌍둥이들의 시험점수를 ‘0점’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 학교 2학년생의 아버지인 이신우 숙명여고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대학 신입생의 76.2%를 뽑는 수시 전형은 내년 1학기 까지 내신으로 선발하는데 이대로면 쌍둥이들은 전교 1등을 한 성적으로 대학을 간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그것으로 인해 각 과목별로 내신 등급이 한 단계씩 떨어져 피해를 보는 학생들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지난달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학교 측 운영위원이 ‘대법원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학생들에 대한 징계를 할 수 없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면 4~5년이 걸릴지 모르는 것이고, 이 쌍둥이들이 대학에 입학해 졸업까지 할 수 있는 시간”이라며 조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학부모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학교 측이 전반적으로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학교 측은 교무부장과 쌍둥이를 보호하고 비호하는 일에는 굉장히 적극적”이라고 주장했다. 시험 부정의 결과가 답안지와 성적표에 증거로 남아 있는데 학교 측은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를 비롯한 학부모들은 이미 9월 서울시교육청이 A씨에 대한 중징계 요구를 학교에 했으나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점도 문제삼고 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